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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Oct 15. 2021

다 이름이 있다

누구나, 무엇이나 저마다 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두 이름이 있거늘 너른 들판에 이름이 없겠는가. 이곳 호동 마을의 들녘에도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이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시골생활에 점점 젖어가면서 어릴 적 듣고는 잊고 지낸 들판의 이름이 이제 다시금 새롭게 들린다.  

이른 아침, 운동 겸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 온 들판을 한 바퀴 돌고 온 성수씨는 굽은 허리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는 길심씨를 위해 들판 상황을 브리핑한다. 그 브리핑에는 들판의 이름이 다 나온다. 

"등가래 우리 논에 나락이 점점 더 쓰러지고 있대."

"범굴샘 ○○네 논은 나락이 깨끗하게 잘 되얏등만."

"나들이, 삿갓등, 갓골, 어리등을 지나 무내미 우리 논까지 빼앵 돌아 왔구만."

"무내미 우리 논은 오늘 나락을 빌라는가 갓을 다 둘러놨등만."


'등가래'는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들판이다. 동네 초입에 자리한 길심씨네서는 더 가까워 그야말로 문전옥답인 셈이다.  길심씨네는 무내미에도 논이 있지만 거기는 멀어서 연로하신 부모님 대신에 다른 분이 농사를 짓는다. 들판 이름 등가래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는 없다. 어학사전에서 찾아보면 '소 따위의 길게 늘어진 등뼈 부분'으로 나온다. 지금은 그간 몇 번의 농지정리를 통해 논 모양이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하지만 그 옛날엔 다랑이 다랑이 논이 지금보다는 높고 소 등뼈처럼 생겼었다고 길심씨는 말한다.


범굴샘은 등가래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들판이며 호동 저수지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호랑이가 나오는 샘이 있었다고 해서  범굴샘으로 불린다고도 한다. 이것도 입으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이다. 어렸을 적 들은 입말들은 나중에 알고 보면 어이없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요전 날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아랫마을의 마을 표지석을 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나간촌'으로 알고 있던 마을은 '낙안 마을'로 표지석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혼자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때는 한자를 몰랐고 소리 나는 대로 들었던 모양이다. 그걸 글로 쓸 일은 더더욱 없었으니 말이다


삿갓등, 갓골, 어리등 들판은 버스가 다니는 찻길 건너 아래에 있다. 어리등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멀리 있는 들판이다. 너무 멀어서 논에 다니기 힘든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노인 전동차를 이용하기도 한단다. 어리등이라는 이름도 내가 소리 나는 대로 듣고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도 입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마저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전유물로 끝나버리지 않을까 아쉬움이 생긴다.


오늘 아침에도 등가래 들판을 한 바퀴 돌아 산책을 다녀왔다. 하루가 다르게 들녘의 색깔이 누렇게 물들고 한쪽 빈 농로에 무리 지어 있는 키 큰 억새는 아직 새초롬한 옛날 새색시처럼 몸을 꼬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성수씨는 이들을 눈독 들이고 있다. 베어다가  빗자루를 만들 모양이다. 모쪼록  들판도 제 이름을 잘 간직하고 많이 많이 불렸으면 좋겠다. 내일 아침에는 등가래를 지나 범굴샘까지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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