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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홍 May 07. 2024

파혼 후 집주인이 되었다

슬픔 뒤에 찾아오는 기쁨






몇 달 부동산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수업만 들으면 나도 금방 다른 사람들처럼 부자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보다.



그러다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함께 강의를 듣던 친구가 요즘 핫하다는 아파트를 보러 간다는 것이다. 물건만 있으면 바로 계약하고 올 거라며. 나는 이때다 싶어 그녀를 따라나섰다.                          



얼마 전 새로운 지하철 역이 개통한, 서울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수도권 지역의 준신축 아파트였다. 뷰도 위치도 훌륭한 1000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 가보니 정말 부동산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오늘 집을 보려면 번호표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저번 주에 지방에서 아줌마 부대가 다녀가서 물건이 거의 없다고.     


                   

 우리가 받은 번호표는 9번. 오늘 안에 보기는 글렀다.                          



"사장님, 집 안 봐도 되는데 물건 없어요?" 친구가 물었다.      

"아이고, 사모님. 것도 동났어. 그나마 나온 거 저거 한 집이야. 연락처 남기시면 내가 전화드릴게"     


                     

나는 이 모든 관경이 신기했다. 회사와 집만 오가던, 취미라고는 남자친구 만나는 것 밖에 없던 서른다섯 여자에게는 너무나 신기한 관경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왜 그동안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는 말인가?



하지만 것도 잠시, 한참을 기다렸지만 결국 우리의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고 친구는 아이 하원 때문에 먼저 집에 돌아가야 했다.



나는 이왕 온 김에 주변부동산을 더 돌아보기로 했다. 그저 아무 거나 좋으니 집이라도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몇 번 더 부동산 문을 두드린 끝에 드디어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사장님을 찾았다.               




“사장님, 00 아파트 물건 있어요?” (친구를 따라 해 보았다)      

“어이쿠, 있고 말고요, 일단 앉아보세요”                          




밝은 모습의 사장님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진하게 믹스커피를 한 잔 타준 사장님은 그때부터 부리나케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녀 힘들었는데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네, 사장님. 00 부동산입니다. 저번에 내놓으셨던 물건이요 지금 딱 찾으시는 손님이 계셔서요. 허.. 그렇군요. 넵 알겠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거절뿐, 이미 동네에 집값이 올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돈 것이다. 사장님은 포기하지 않고 전화를 돌렸다. 문득 강의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부동산 사장님들도 두 분류가 있어요. 한 분은 중개만 해주시는 분, 다른 분은 알아서 영업도 해주시는 소위 '작업'도 해주시는 분. 당연히 두 번째 분을 만나면 좋겠죠?'



아무래도 이 분은 후자인 듯했다. '사람을 제대로 찾았다' 싶던 순간 사장님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그는 전화기를 어깨에 낀 채로 눈짓을 했다    


                      

“아이고오- 사모님 그럼요, 바로 계약금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어림잡아 스무 통이 넘는 전화 후에 들려온 기쁜 소식이었다. ‘된대요?’ 나는 입모양을 뻥끗거렸다.



'아니, 정말 되는 건가?...'







사실 난 이곳에 아파트를 살 생각이 없었다. 연고도 없고 직장도 먼 이곳에서 나의 첫 집을 산다니. 그 흔한 청약 한번 해본 적 없는 내가 투자용 집을 산다고? 그것도 이렇게 갑자기?



순간 부동산을 살 때는 늘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강사님의 말이 떠올랐다. 정 방법이 없을 땐 내가 이 집에 들어와 살아야 한다. 말 그대로 몸테크.



‘내가 과연 이 집에 들어와서 살 수 있을까?'



대답은 당연히 'No'. 하지만 당장 나에겐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현재 시세보다 싸게 나온 물건이었다. 돈 앞에서는 눈이 뒤집힌다더니.



결국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바로 가계약금 500만 원을 보냈다. 그 후 일어난 일은 일사천리. 수중에 있던 돈에 신용 대출까지 받아 일주일 안에 잔금을 모두 치렀다.



세상에, 삼십 년간 부동산에 '부'자도 모르던 내가  말로만 듣던 ‘갭투자’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께도. 얼마 전까지 결혼하는 줄만 알았던 딸내미가 갑자기 아파트를 산다고 하면 등짝 스메시가 날아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이게 과연 맞는 건지, 내가 이 집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당시엔 알 수 없었다. 그저 멍했다. 내가 아파트 산 게 맞긴 맞을까? 꿈은 아닐까? 과연 이게 잘한 짓일까?



하지만 걱정과 달리 나는 6개월 만에 집을 되팔아 수익을 냈다. 운이 좋았다. 당시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보상처럼 느껴졌다. 파혼으로 몸과 마음이 엉망인 나에게 하늘이 주는 선물.



그 후 목돈이 생긴 나는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를 샀다. 재개발로 지어진 곳이었다. 방 2개 거실 하나. 혼자 살기 딱 좋은 사이즈였다. 물론 사람들이 말하는 일급지도, 3대 브랜드 아파트도 아니었지만 충분히 만족했다. 어차피 최고란 건 남자도 아파트도 내 몫이 아니란 걸 일찌감치 깨달았기에.




그렇게 나는 얼마 후 꿈에 그리던 독립을 하게 됐다.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나의 첫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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