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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홍 May 14. 2024

자취하고 처음 만든 장조림 덮밥

어린 시절 추억의 요리




요리가 귀찮은 사람에게 매 끼니를 잘 챙긴다는 건 사치다.



독립 후 가장 큰 어려움은 끼니 해결이었다. 처음에는 매 끼니를 성대하게 차려 먹었다. 안 해보던 요리도 하고 밥까지 지어 사람들도 초대했다. 물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뒤늦게 찾은 자유를 자축하기라도 하듯.        



     

하지만 곧 밥 해 먹을 일이 까마득해졌다. 인간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초기 뭐든 잘해 먹던 나도 곧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요리에 흥미를 잃은 뒤 얼마간 배달 음식으로, 다음엔 엄마 반찬으로 연명했지만 그마저 늘어나는 식비와 본가에 가는 번거로움 때문에 그만두었다.      




결국 나는 빠르고 편한 긴편식을 만들어 먹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튜브와 블로그에 ‘자취요리’를 검색하니 유용한 레시피가 넘쳐났다. 간단한 파스타부터 냉동 음식 조리법까지 10분이면 뚝딱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이렇게 많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블로그에 나를 멈춰 세운 음식이 있었다. 바로 ‘장조림 덮밥’. 햇반에 장조림에 올리고 기호에 따라 프라이나 스크램블을 올리면 끝! 재료도 방법도 아주 간편했다.     


 

문득 오빠와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오빠와 나뿐이었다. 일 나가신 부모님은 집에 없었고 어두운 집에는 두 살 터울 남매만 덩그러니 남아 티브이를 보거나 숙제를 했다.      



우리 집은 9평 반지하 방이었다. 안방 작은 방 거실 겸 부엌, 네 식구가 지내기엔 비좁았지만 단칸방이던 이전 집에 비하면 대궐이었다.          


      

반지하 방은 빛이 잘 들지 않고 창문을 열면 사람들 발만 보였다. 외부에 노출된 현관으로 가끔 취객이 문을 두들기기도 했고 장마철이면 물이 넘쳐서 온 가족이 물을 퍼내기 바빴다.           



그래도 남매에게는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 배를 깔고 누워 숙제를 하던 나는 오빠에게 묻곤 했다.           



“오빠, 배 안 고파?     



나는 늘 배가 고팠다. 어른이 없는 집, 배를 곪고 있던 남매는 둘이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냉장고에는 엄마가 출근 전 만들어 두고 간 찌개가 있었지만 어린 우리는 잘 먹지 않았다.




대신 용돈을 모아 햄버거를 사 먹거나 실컷 군것질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그마저 물리면 따뜻한 쌀밥이 그리워졌다.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 그 시절 어린 남매에게는 부모의 손길이 절실했으리라.       


    

“배고파?”
“응”

“잠깐만 기다려 봐”



오빠와 어렸을 때부터 다정하고 착했다. 덜렁거리고 목소리 큰 나와 달리 그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세심하고 꼼꼼해서 뭐든 잘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빠를 이겨먹으려고만 하던 동생이 성가셨을 법도 한데. 오빠는 나에게 밥을 자주 만들어 주었다. 그래봤자 10살 꼬마가 말이다. 오빠가 만들어 준 것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통조림덮밥'이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찬장에서 통조림을 하나 고른다. 야채참치, 고추참치 그리고 장조림. 그 중에 하나를 따서 밥에 올린다. 랩을 싸서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돌린다. 끝! 캔 중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장조림 캔이었다.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한 맛이 일품인 장조림 캔.            



"맛있어?"

"응, 완전!!"



8살, 10살. 두 살 터울 꼬맹이는 그렇게 컴컴한 반지하 방에서 서로의 끼니를 챙기며 무럭무럭 자랐다. 게다가 우리는 같은 방을 썼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이후 혼자 지내 동안 장조림 덮밥은 나의 최애 요리가 되었다. 빠르고 간편하고 추억도 되살려 주는 일품식 요리. 지금도 장조림 캔을 보면 오빠가 떠오른다. 



얼마 전 그는 결혼하고 애도 낳았다. 시집 못 간 나 대신 효도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오빠, 오빠는 어떤 여자가 좋아?” 결혼 전 오빠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음... 너랑 정 반대인 여자”

“.... 모냐”          



오빠는 정말 나와 반대의 여자를 만났다. 얌전하고 조용하고 차분하고. 따뜻한 마음씨의 착한 여자. 새언니는 그런 사람이다.      



지금도 종종 통조림 덮밥을 해 먹는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야채참치, 고추참치, 장조림을 신중하게 고르며. 여전히 나의 최애는 장조림 덮밥이다. 오빠와 나 둘이서 해 먹던 그날의 그 요리.



오랜만에 만들어 본 장조림 덮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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