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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 May 21. 2024

서른일곱, 외로워서 동호회에 가입했다

독립 후 친구 만들기 




처음으로 만끽하는 혼자의 삶은 좋았다. 샤워 후 홀딱 벗고 거실을 돌아다녀도 되고 출근 시간이 겹쳐 욕실 사용을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넓은 거실을 혼자 쓰는 것도, 옷방을 갖는 것도 처음이었다. 꿈에 그리던 삶을 모두 이룬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내 것 내 맘대로. 늦게 들어오든 외박을 하든 누가 신경 쓴단 말인가.



‘음.. 침대는 이케아, 테이블은 무지가 좋겠다!’          



인테리어의 ‘인’자도 모르는 나였지만 ‘모던 빈티지’ ‘미드 센츄리’ 등 SNS에 올라오는 대세를 따라 했다. ‘오늘의 집’에 올라온 사진 중 우리 집과 비슷한 구조를 고른 뒤 제품을 따라 사면 그만이었다.      



세탁기, 냉장고, TV 등 큼지막한 가전들은 한 브랜드에서 한꺼번에 구매하면 저렴했다. 청첩장이 있으면 신혼 할인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샘플로 만들까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남들은 다 결혼하는데 나는 청첩장 위조하고 있다니 괜히 쓸쓸한 기분만 들까 봐 말이다.      



그래도  해보지 못한 건 다 해보자 마음먹었다. 취미에 없던 요리부터 1인 가구에 유용하다는 물건도 전부 다 샀다. 찌든 때에 좋다는 구연산을 시작으로 베란다 창문 닦기 기계, 창틀용 도구까지 굳이 없어도 되는 것들로 온 집안을 채웠다.           



사람들도 초대했다. 친구에 지인에 직장동료에, 주말마다 사람들을 불러서 요리를 해 먹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래도 뭔가 허전해서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식물도 들여놓았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강아지라도 키워볼까 했지만 혼자 사는데 개까지 키우면 영원히 싱글로 남는다는 구전처럼 떠도는 주인공이 내가 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상하게 외로웠다. 지인들을 부르는 것도 하루 이틀,  인테리어는 몇 달, 열심히 만들어 먹던 밥도, SNS에 자랑하듯 올려두던 사진도 시간이 지나가 점점 흥미를 잃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사람과 부대끼며 생긴 스트레스가 이제는 외로움이 몰려왔다. 어떤 날은 일어나자마자 훅 하고 외로움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느껴지는 적막이 싫어 음악부터 틀고 창문도 활짝 열었다. 퇴근 후에도 텅 빈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게 꺼려져서 없던 야근까지 만들어서 늦게 들어가곤 했다.           



쓸쓸함이 싫어 냉장고는 반찬으로 책장은 책들로 가득 채웠지만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누가 혼자의 삶이 아름답다 한 거야?' 



어느 시점이 되자 외로움이 자유가 주는 즐거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에겐 새로운 아침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혼자 있을 때의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 이것저것 분주하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운동, 명상, 요가, 감사일기 쓰기, 자기 암시 등등. 



나중에는 제 발로 동호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무한처럼 느껴지는 자유의 시간과 고독한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말이다.  동호회는 외롭고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취미나 운동을 핑계로 이성을 만나기 위한 곁다리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런 사람 중 하나라니. 



언제부턴가 항상 만나는 사람만 만나온 나에게 새로운 모임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큰 용기였다. 하지만 목마른 이가 우물을 찾는 법. 처음 찾은 곳은 달리기 모임이었다. 나는 종종 밀려드는 불안과 외로움, 잡생각을 위해 잘 뛰어다녔기 때문에. 



   

며칠간 눈팅만 하다가 용기를 내 모임에 처음 나갔다. 사람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빨리 누구라도 와서 아는 척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신경 써서 입은 운동복 끝자락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OO님 이 시죠?” 

“앗, 넵. 저예요” 

“안녕하세요, 운영진 OO입니다”           



삭막한 사막에 단비 같은 목소리였다. 운영진인 그녀는 나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후에도 그녀 덕분에 동호회 활동이 조금 더 수월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맙다. 30대 후반이라 예상은 했지만 모임에서 난  이미 왕언니였다.       



‘나이가 제일 많다니. 이래서 자꾸 밖으로 나와 현실감각을 길러야 하는구나...’      



모임 활동을 하면서 내가 너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눈뜬장님처럼  나만의 세상에 갇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모두 호의적이었고 운동 동호회라 다들 건전하고 성실했다. 구태여 남아서 술을 마시는 사람도 없었고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다. 멋도 모르고 가입했던 몇 년 전 자동차 동호회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 나이에 외롭고 심심한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됐다. 혼자 사는 직장인에게는 무엇보다 퇴근 후의 적막이 가장 괴롭다. 평일 오후에는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을 쳐내다가 퇴근 후 홀로 집에 있는 적막함. 그제야 몰려오는 외로움. 이래서 사람들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동호회 활동을 하고 가장 큰 수확은 새로운 소속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모두 결혼해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고, 맘 카페나 육아모임, 조리원 동기 등 모일 곳이 많지만 결혼 안 한 30대 40대는 마음 둘 곳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아무튼 동네 친구가 생겨서 참 다행이었다. 이 나이에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구원이자 위안이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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