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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을 만나본 적 있나요

그것도 전 남친입니다

by 새로운 Jul 26. 2024




밥만 먹고 헤어지려던 우리는 결국 근처 이자까야로 갔다. 그는 화요, 나는 에비수를 시켰다.




“나 그때 너 진짜 좋아했었는데”

“풉”

“정말이야. 헤어지자는 말에 그냥 물러섰지만. 많이 힘들었다”

“… 미안”

“왜 그랬어?”

“글쎄. 왜 그랬지”

“나 한 번도 까여본 적 없는데”

“어머, 내가 최초의 여자야? 너를 찬? 영광이다”

“최초이자 마지막이지”

“와이프 있잖아”

“…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거든?”

“아이고, 주제 바꿀래"

“그래, 재미없어. 이런 이야긴"

 


“그래서 자존심이 상했어? 나 때문에?”

“응.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더 아픈 법이야”



열등감의 종류는 다양하다. 나는 그의 배경에 괴로웠고 그는 부족한 내 사랑 때문에 힘들었다. 그에게 절실했던 건 사랑이었고 나에겐 아니었던 건가.  




“진짜 표정이 밝아졌어” 그가 말했다.

“응?”

“너 말이야. 예전하고 많아 달라졌어. 주연이 결혼식에서부터 느꼈어”

“자꾸 말하는 거 보니까 정말인가 보네. 뭐가 달라?”

“밝아 보여. 에너지가 좋아”

“전에는?”

“까칠했지. 심술이 가득해서. 미간만 잔뜩 찌푸리고”

“뭐야, 내가 언제?”

“하하. 진짠데. 무서웠어, 너. 나한테 맨날 화만내고. 나 항상 졸아있었다고”

“내가 엄청 못 댔었나 봐”

“착했는데, 못됐지”  




그는 미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말해 주었다. 전처와 결혼하게 된 계기, 그리고 헤어지게 된 과정까지. 그는 와이프와 말끔하게 정리했다고 했다. 그녀는 원래 여유 있는 집 딸이었고 일하느라 바쁘다고. 그녀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거대 글로벌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애가 없느니 깔끔하더라. 정리할 것도 많이 없었어. 통장 관리도 따로 했고”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금방 지웠다.



“그래서 와이프는 미국에 있어?"

“응. 원래 거기가 더 편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와이프 아니고 전처다"

“참나, 뭘 그리 정색을"


"근데 왜 헤어진 거야...?"

"글쎄, 이제 왜 헤어졌는지도 잘 모르겠어. 그냥 언제부턴가 하루하루가 지옥이더라. 잘 맞지 않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처음 느꼈어"




나는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안 맞는다'는 게 어떤 걸까? 나는 누군가와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힘들었겠다”

“이혼이란 게 이런 거구나 했어. 덕분에 많이 배웠지 뭐 “

“고생 많았어 “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줘. 이혼남은 상처에 취약하다"

“하하. 한 번 갔다 오더니 넉살이 늘었네"



알딸딸한 게 기분이 좋았다. 예전에는 그저 취하려고 마셨는데. 이제는 술맛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조심히 들어가”

“응, 조심히 가고"




집에 들어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기분이 묘했다. 얼마 전 어플에서 만난 남자에게 대차게 까여 놓고 전 남찬과 썸이라니.




‘차암, 내 연애사도 다사다난하다…‘



한편으로 마음이 편했다. 나는 얼마 전부터 결혼할 생각이 쏙 사라졌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그가 갑자기 나타났다. 예전보다 훨씬 더 멋진 모습으로, 돌싱이 되어.



‘그래, 차라리 한번 갔다 온 게 편하다...'



그 후 그와 몇 번 더 만났다. 평일 저녁에 만나 밥을 먹거나 금요일 저녁에는 술도 마셨다. 내가 연락하면 그는 언제나 오케이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이런 사이도 괜찮지, 뭐”



애써 친구라고 합리화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그날은 술이 좀 과했다. 이번에는 내가 자주 가는 동네 횟집이었다. 한 접시 삼만 원짜리 세꼬시를 시키고 그는 소주를, 나는 맥주를 마셨다.  



“와아- 취한다”

“그러게 우리 술 많이 늘었다”



시간은 12시가 넘었고 어느덧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문을 닫은 가게 앞에 나란히 서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자연스럽게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주었다.



“담배 냄새나려나?”

“응, 근데 괜찮아.”



텁텁하면서 화한 민트향. 어릴 적 아빠에게서 자주 맡던. 좋아하는 남자 앞에선 이상하게 아빠가 생각났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행이다”

“뭐가?”

“네가 놀아줘서.”

“뭐야.”

“나 이혼하고 들어와서 좀 막막했거든. 하는 일도 그렇고.”

“너 전에도 나 그렇게 꼬신 거 알지, 한국에 친구 없다고"

“맞아. 아마도 넌 나의 구세주인가 봐. 에인-젤. 큭큭”

“참나. 근데 그거 알아?"

“뭘?”

“나도 친구 없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길게 나를 응시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당황해서 웃음이 났다.



“선생님, 뭡니까. 이건”



당황스러울 땐 웃고 만다. 이런 노곤한 분위기가 영 불편하다. 손을 뺄까 잠시 고민했다. 그는 슬쩍 내 손을 가져가 입을 맞췄다. 취기가 오른 그의 입술이 따뜻했다.



“좋다. 네 냄새.”

“나 손 안 씻었는데”

“푸합, 너는 꼭 그러더라”


그 후 우리는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사진 : SBS 드라마 '마이데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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