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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의 첫 순댓국

by 새로운 Jul 25. 2024




망상에 빠져있던 나를 깨웠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으, 응? 아니야. 우리 무슨 이야기했었지?"


"너 많이 변했다고. 훨씬 좋아 보여. 밝고"

"그래? 내가?”

“응, 느낌이 많이 달라졌어. 전에는 무서웠는데 “

"에이, 무슨 말이야"

"...."

"진짜구나? 나 그랬어? 나 그렇게 별로였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하하. 그냥 좀 나한테만 못 댔던 건가. 그간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나? 별일 없었어. 그냥 즐겁게 살았어”

“즐겁게?”

“음.. 연애를 안 했지. 하하”

“장난치지 말고”

“정말이야, 누군가를 안 만나니까 자연스럽게 나를 찾게 됐달까. 그때는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았나 봐”




“이번 주말에는 뭐 해?”

“이번주..? 일이 있어”

“무슨 일?”

“그냥 약속. 뭐야, 그런 것도 묻는 사람이었어?”

“궁금해서”


...



결국 브런치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커피만 홀짝였을 뿐. 그도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다 먹었으면 일어날까?"

“응, 데려다줄게”

“응. 고마워”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의미 없는 거절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예의 상 하는 거절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잠시 뒤 그의 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집 앞에 섰다. 그는 아직도 우리 집을 기억하고 있었다. 일부러 차에서 내려 나를 배웅했다.



“뭐 하러 내려”

“그냥”

“조심히 들어가”

“응, 덕분에 즐거웠어. 연락할게”

“응, 들어가”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한창 바쁠 때라 회사와 집을 오가며 정신없이 지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연락이 왔다. 야근을 마치고 막 집에 왔을 때였다.



“요즘 바쁘지?”

“응, 그럴 때라. 넌?”

“난 한가해. 저녁은 먹었고?”

“아니, 아직”

“저녁 할래? 마침 근처인데”



얼굴도 엉망이고 차림새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 티가 나지도, 능글맞지도 않은 그의 말투가 따뜻하게 느껴졌고 이제 거절은 싫으니까. 주차를 마저 하고 차에서 그를 기다렸다.



이 나이쯤 되니 심장이 뛰면 오히려 경계하게 된다. 또다시 상처받고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맞는지 틀린 지, 진심인지 떠보는 건지 마음의 경중을 따져보고 면밀히 계산한 뒤, 각이 나오면 고, 아니면 빽도. 30대 정도 되면 으레 하게 되는 관계의 손익계산, 감정의 대차대조표.



조금 뒤 그가 왔다. 그의 차에 탔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응, 있어. 순댓국”

“좋지”



가끔 가는 순댓국집. 평일 저녁에도 사람이 많았다. 몸이 허하거나 고기가 당기면 오는 곳이었다. 뽀얀 국물에 파를 적당히 넣고 들깨 가루를 왕창 쳐서 먹으면 하루 피로가 싹 가셨다.




“사장님, 여기 순댓국 두 그릇이요. 맥주?”

“아니, 운전”


“아직도 맥주파구나.”

“그럼, 종종 마셔. 근데 너랑 순댓국은 처음 먹어봐. 좀 이상하다”

“그러네, 예전에는 왜 이런 데를 안 왔지”

“왜긴, 그때는 네가 왕자님이었잖아”

“에이, 무슨 소리야”

“진짜야”  



순댓국이 나왔다.



"어때? 괜찮아?”

“응, 맛집이다. 여기”




조용히 신이 났다. 그땐 이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알 수 없는 인생, 알 수 없는 미래. 이래서 인생이 재미있나 보다. 예전에는 모든 게 깜깜하게만 느껴졌는데. 시간의 힘인가, 지금은 안개가 조금 걷힌 기분이다.  




우리는 순댓국을 말끔히 비워냈다. 나는 맥주 한 병까지 깨끗하게 비우고 일어났다.



“와아- 잘 먹었다!”



막 계산을 마치고 나왔을 때 그가 말했다.



“한잔 더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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