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싱글 생존기>
“인생 뭐 있냐, 어차피 혼자인 거”
한동안은 이 말을 무슨 교리처럼 달고 살았다. 한창 ‘냉소’라는 쿨병에 걸려있을 때였고 유리 멘털이 깨질까 조마조마하며 ‘시니컬’이라는 방패를 마법의 검처럼 휘두르고 다닐 때였다. 하지만 뒤늦게 깨달았다. 힘들어 죽겠는 사람에게 ‘누구나 힘들어’라는 힘이 되지 않듯, 외로운 사람에게 ‘누구나 외롭다’는 말이 크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요즘은 커플들이 부럽다. 한 때는 연애에 집착하는 것 같아 일부러 쉰 적도 있는데 지금은 만나고 싶어도 만나주는 사람이 없다.
비자발적 연애불능이 되었다고나 할까.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벗어난 영역에는 쉽게 무력해진다. 그래서인지 지나가는 커플만 봐도 부럽다. 커피숍에 있을 때도, 길거리를 걸을 때도, 성수동 핫플에서도 온통 커플들 뿐이다. 횡단보도에서 커플들이 손만 잡고 있어도 눈꼴이 시어서 슬금슬금 옆으로 피한다. 아니, 커플들이 이렇게 많았나? 쳇,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한 것만 같은 이 기분이란.
나는 독립한 지 2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결혼이 아니어도 혼자 멋지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라며 호기롭게 나왔건만, “월세라도 내줄 테니 제발 그냥 나가 살라”던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꼬리를 잔뜩 내리고 본가로 돌아왔다.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다. 누가 들으면 웃겠지만, 나는 정말 외로워서 돌아왔다. 다들 혼자 어떻게 사는 건지, 헨리 소로는 2년간 호숫가 통나무집에서 홀로 지내며 역작 <월든>을 완성했고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일찍이 은퇴하고 시골에서 칩거하며 여생을 보냈다는데 나는 역시 그런 위인은 못되나 보다.
처음에는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사실 나는 아주 외로움을 많이 타는 녀석이었고, 누구나 그렇듯 나에 대해 잘 몰랐을 뿐. 근 2년 동안 외로움의 온갖 스펙트럼을 겪어낸 후에야, 내가 혼자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며 집보다는 밖을, TV보다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외로움에 취약한 사람이 혼자 살아보니 여러 단계의 외로움을 경험하게 되더라. 그중 몇 가지만 공유할까 한다.
외로움의 3단계
1단계 부정 |
외로움 자체를 부정한다. 외로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쿨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하며 허세를 떠는 시기. ‘혼자서도 잘 사는 게 단단한 어른이지’라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으며 TV에서 본 건 다 따라 하려는 특징이 있다. 매일 고슬고슬한 밥을 짓되, 아침은 토스트에 유기농 버터를, 저녁은 기분에 따라 파스타 혹은 된장찌개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명상 혹은 책을 읽고 잠시 요가를 한 뒤 정갈하게 씻고 출근할 준비를 한다. 집을 나서는 길에 다시 한번 거실을 정리하는 센스! …를 뽐내면 좋으련만.
명상을 위해 눈을 감는 동시에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커피는 잠을 깨기 위한 카페인의 도구일 뿐, 여유로운 커피 한잔의 여유 따위는 없다. 가끔 토스트를 구우면 속만 부글부글, 점심을 먹을 때까지 배만 더 고프다. ‘아, 나는 아침 먹는 게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이걸 마흔이 다 돼서야 알았다니.
2단계 분노와 좌절 |
이유 없이 화가 난다. 마치 갱년기 엄마처럼, 매일매일이 그날이다. 나 건들지 말라고!! 혼자 살면 당장 남자친구라도 생길 줄 알았는데,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아무나 들이지 않겠다며 남자 보는 기준만 높아졌다. 남자들이 혼자 사는 여자 좋아한다길래 원룸 말고 아파트로, 그것도 신축으로 무리해서, 신용대출까지 당겨가며 아파트로 들어왔건만, 각종 공과금에 이자는 자꾸 늘고 통장은 ‘텅장’이 되어간다. 비싼 돈 들인 넓은 집에 혼자 덩그러니 있다 보면 쓸쓸함만 더하다.
3단계 순응 |
그래, 어쩔 수 없다. 이제 방법이 없음을 깨닫는다. 혼자 살 팔자, 아니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 기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버리지 못한다. 강아지를 키워볼까? 고양이? 식물? 아, 화분을 종류별, 크기 별로 10개도 넘게 샀건만 다 죽었지. 룸메를 구하는 건 어떨까? 아니 혼자 살겠다고 나온 얘가 무슨 룸메야… 하아, 정신 차려. 너는 안 외로워. 나는 안 외롭다, 안 외롭다, 안 외롭다, 외롭다, 외롭다, 외롭다…! 그래, 나는 외롭다.
하아, 그래 돌아가자! 그나저나 큰일이다. 엄마에겐 ‘걱정 마세요, 2년 만에 잘생긴 사우 한 명 데리고 올게요! 큰소리 빵빵 쳤는데…
외로움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니체를 비롯해 쇼펜하우어, 칸트, 몽테뉴 등 수많은 철학자들이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쇼펜하우어는 ‘외로움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외로움이란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임엔 분명하다.
장난스레 말했지만 나 역시 혼자 사는 2년 동안 꽤 많은 것을 얻었다. 주변을 정리하는 버릇, 책 읽으며 잠드는 습관을 몸에 익혔고, 무엇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집보다는 밖을, 라면보다는 비빔면을 좋아한다. 'I' 보다 'E'에 가까운 사람이고 올빼미형 보단 새벽형이고 혼자 하는 운동보다 함께 하는 운동을 선호한다.
덕분에 나는 외로울 때 써먹을 수 있는 나만의 해소법을 찾았다. 지금도 가끔 온 우주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가장 먼저 몸을 움직인다. 감정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을 되뇌며 순간의 기분에 매몰되지 않기 노력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청소나 빨래하기, 산책하기 등이다. 밖으로 나가 주위를 환기하고 바깥공기를 맡으면 침울했던 감정이 자연스레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친구를 소환하거나 전화를 건다. 그럼 혼자라는 생각이 아끼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전환된다.
전에는 죄 없는 남자친구에게 징징대며 해소했던, 그래서 끝없이 연애해야만 풀 수 있던 거북했던 감정을 비로소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외로움은 부정하고 거부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겸허히 받아들이고 적당히 즐겨야 하는 것임을, 모른 채 묻어두기보다 스트레스처럼 적극적으로 해소해야만 하는 류의 것임을 이제야 깨닫다니.
그러니 부디 외롭다고 꽁꽁 싸매고 있지 말고, 외로움이 휘몰아치면 나가서 햇빛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사람들을 만나자. 외로움 거부하고 비난하기보다 포용하고 때론 적극적으로 환영하자. 좌절할 시간에 맛있는 거 하나라도 더 먹고 잠이나 더 자자.
부디 외로움에 대처하는 나만의 해소법을 찾기를. 세상에 똑같은 인생은 없듯 외로움에도 차별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