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남자에 대한 (비) 과학적 고찰
‘가는 여자 안 잡고 오는 여자 안 막는다’
30대 들어 가장 놀랐던 건 남자들의 뜨뜻미지근한 태도였다. 20대 때 불도저 같은 저돌적인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생각 한 번 해봐, 싫음 말고'라는 식의 태도를 보고 처음에는 적잖게 당황했다. 소개팅이 끝나도 감감무소식, 도대체 관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만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어렸을 적 남자들이 말하는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의 언어’에 한편으론 공감하면서도, 30대가 되니 ‘좋은 건지 싫은 건지’를 해석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해야 했다.
내 주가가 급락한 건지 남자들이 변한 건지, 아님 둘 다인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 한동안 좌절과 실망을 반복하며 갈팡질팡했지만, 절이 싫다면 스님이 떠나야 하고, 절이 좋은 스님은 남아야 한다. 나는 아직 절이 좋다(웃음).
100번이 넘는 소개팅과 수많은 썸, 지지부진한 밀당, 그리고 그간의 연애 경험도 모자라 친오빠에 오빠의 친구, 친구의 친구, 남사친, 동료 등등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증언을 토대로 30대 남자들의 연애 특징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여자들이여, 펜을 준비하시라(이 글의 모든 문장 주어는 ‘여자’로 바꾸어도 무방하니 젠더적으로 무해한 글임을 미리 밝혀둔다).
우선 삼십 대 남자의 라이프스타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평일에는 회사. 두 번째,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운동이나 취미생활. 세 번째, 주말 집에서 푹 쉬거나 부업활동.
가장 먼저 알아두어야 할 건 남자들의 관심사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20대 남자들의 키워드가 '놀이'와 '연애'였다면 30대 남자들의 키워드는 '커리어'와 '자기 자신'이다.
이들은 이 두 가지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20대에 만나기만 하면 주로 여자 이야기만 하던 남자들이 30대가 되면 서로 여자친구 이야기도 잘 안 한다. 이 시기에 남자들은 회사에서 승진하면서 사회생활에 정점을 찍을 시기인 동시에 이제야 자기 자신을 좀 돌아보게 될 때다.
더 이상 여자친구 가방 들어주면서 비위 맞추기도 싫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은 것이다. 경제력 상승과 함께 물리적, 정신적으로 여유로워졌기 때문에 데이트 비용 걱정하는 20대를 지나 먹고 싶은 것 정도는 사 먹을 수 있는 위치가 되었다. 이제 그 돈을 일장춘몽, 눈 감으면 사라질 연애에 쓰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쓰고 싶어졌다.
삼십 대 남자의 연애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싫음 말어.
삼십 대 남자들은 전형적인 만성피로에 시달린다. 이십 대와 비교한다면 충분히 피로도가 상승했다. 이들은 이미 회사 일로 지쳐있고, 그 외에도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요즘 야근이 사라지고 워라밸이 지켜지는 문화라지만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받은 만큼 일한다. 게다가 요즘에는 회사뿐 아니라 주식에 부동산 공부에 퇴사 준비, 뭐 이런 걸로 정신이 없다. 퇴근해서 인강도 들어야 하고 주식모임, 투자모임 뭐 그런 것도 가고.
게다가 아무리 꼰대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으로 사내에 또라이는 언제나 일정 질량 존재하기 마련. 회사에서 이런 사람들 상대하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직급이 높아지면서 그만큼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도 높아졌다(물론 여자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기에 예전처럼 예쁜 여자 찾아다니면서 불태울 열정이 사라진 것이다.
또 한 가지, 삼십 대가 되면 생물학적으로도 호르몬의 변화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연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인간의 신체 능력은 이십 대 초반에 정점을 이루다가 이십 대 후반부터는 서서히 감소하고 삼십 때에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사십 대부터는 사정없이 곤두박질치는데, 대표적인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역시 보통 삼십 대가 되면 일 년에 1% 정도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니, 정말인가 보다.
한밤중에 헌팅 포차에서 어슬렁거리던 남자들이 삼십 대가 되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걸 증명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이쁜 여자가 오면 땡큐 아님 말고' 하는 마인드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일 수도.
두 번째, 낭비하지 않는다
삼십 대가 되면 남자들이 절대 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감정 낭비, 돈 낭비, 시간 낭비(이것 역시 여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제 자기 자신이 돌보기 시작하는데, 감정 낭비는 이십 대 때 다 해 봤고 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싫어진다. 20대부터 영혼을 팔아 일한 덕에 연봉을 얻었고 불안하고 초조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 벌 만큼 벌고 쓸 만큼 쓸 수 있게 됐으니 그 돈을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고 싶어 진다.
연애란 게 헤어지고 보니 말짱 도루묵이라는 걸 경험으로 깨우치게 된 것. '아... 의미 없다. 의미 없다' 이불 킥 하는 밤들이 늘어나면서 당연히 어차피 헤어지면 그만인 연애 자체에 더 이상 돈 쓰고 싶지 않은 심리다. 이제 본인 머리는 청담 헤어디자이너 샘한테 하고 비싼 옷도 좀 입고. 명품도 스스로에게 선물해 본다. 이런 마인드기에 소개팅 나가서 상대가 조금이라도 갑질하는 것 같으면 바로 손절, 썸 좀 타다가 고백했는데 미적지근하게 나오면 바로 패스, 예쁘다는 이유로 커피 한 번 안 사면 바로 패스(사실 요즘 이런 여자 없지만).
연애 경험도 좀 쌓여서 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것도 이미 알았고 예쁘다고 뭐든 받기만 하는 태도가 싫어서 꼭 외모에만 목매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연애에 돈을 쓰느니, 빨리 한 푼이라도 더 모아서 비상장 주식, 아니 지방 아파트 갭투자로 사두어야 하는데 연애에 쓸 돈이 어디 있담.
세 번째, 연애는 옵션 취미는 필수
연애를 쉬며 눈을 들어 보니 주변에는 재밌는 게 넘쳐난다.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친구들하고 스크린 골프 몇 시간 치다가 저녁 되면 술 한잔하고 헤어진다. 그렇게 또 열심히 연습하다가 한두 달에 한 번씩 필드에 나가면 우연히 예쁜 여자가 나오기도 하고, 사실 이제는 남자들끼리 노는 게 더 재미있기도 하다.
차 타고 몇 시간만 가면 서핑도 할 수 있고 이제는 예쁜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그냥 예쁜 여자들이 많은 곳에 가서 구경이라도 하는 게 가성비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바디 프로필 예약하고 열심히 몸 키우며 운동하다 보면 전에는 콧방귀도 안 뀌던 여자들에게 갑자기 인기가 폭발하기도 한다.
특별한 일 없는 날 그냥 집에서 넷플릭스 몇 번 몰아 보면서 맥주 마시다가 잠들면 세상에 다 내 것만 같다. 역시 취미가 최고다. 헬스는 무게 드는 만큼 몸이 바로바로 달라져서 뿌듯하고, 골프는 연습하는 만큼 자세가 나오니까 그냥 나만 잘하면 된다.
요즘에는 결혼이 필수도 아니기에 부담이 적다. 주변에 일찍 결혼해서 육아 때문에 와이프랑 싸우는 친구들 보면 이건 아닌가 싶고, 한번 갔다가 돌아온 지인도 하나 둘 생긴다. 주변에 진짜 능력이 있고 잘생긴 형들 보면 일부러 안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때를 빌어 철학적인 생각에 빠져보기도 한다. 부모님 때문에 결혼하는 세대도 아니다. 효도 때문이라면 차라리 용돈을 더 드리고 말겠다.
그래서인즉, 여자들의 알 수 없는 언어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밀당하기, 사랑하는지 아닌지 계속 확인하기, 쉬워 보일까 봐 한두 번 빼기, 집착하기, 과하게 의존하기 등등.
이제 하루 종일 자기 연락만 기다리고 있는 여자 말고 자기 인생은 자신이 어느 정도 케어할 수 있는 '자기 주도형' 여자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여자들이여,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