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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Jul 27. 2022

또라이 이력 만들기

도전하는 것이 남부끄러울 때

내가 혼자 충동적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친구가 부럽다고 해서 혼자 충동적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혼자 충동적으로 여행을 간다' 현상이나 행동을 부러워한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나의 모범적이려고 애쓰는 보수적인 성격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조차 원천 차단되었다면 문제일  있겠지만, 딱히 내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있는 행동을 시전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또라이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그들의 행동이 아니었다. 그 행동으로 상징되는 사고방식이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 말하는 것, 그리고 행동하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그의 행동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


나는 데이터가 있으면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고 말하는 데에 자격이 필요할 리 만무하다는 걸 알면서도, 또라이 이력이 있어야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하던 짓을 하는 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뭐임?' 할까 봐, 부끄러울 게 싫었다는 뜻이다. 참내 난 내 성격이 이렇게 복잡한 줄은 몰랐네.


그렇지만 첫 이력을 만들려면 부끄러움을 무릅써야 했다. 평소의 나와 결이 다른 행동을 해야 했다.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것처럼, 회사에 가는 것처럼 낯선 경험을 해야 했다. 부끄럽다고 생각 말자, 부끄러운 일 아니다 생각하는 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등학생일 때는 공부 외에, 대학생일 때는 스펙을 쌓는 것 외에는 관심 없다는 듯 늘 점잖을 떨어왔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두고 '나 오늘부터 이거 할 거야!' 하고 선언하는 것도, '네가 보는 지금 이거, 내가 원하는 걸 하는 과정이야!' 하고 알리는 것도 부끄러웠다. 예를 들면 인스타그램 강의를 듣고 나름대로 실천을 해보겠다고 친구들과 팔로잉을 하고 있는 SNS에 셀카를 올리는 것도 기분이 이상했고, 장난스럽고 가벼운 감정 말고는 올려본 적 없는 피드에 내 감정이나 생각을 꾹꾹 담아 쓴 글을 올리는 것도 이상했다. 목표를 세워놓고 달성을 못하면 남들 보기에 부끄러워질 거 같아 걱정됐다. 잘 아는 사람들 앞에서 '관종'이 되는 게 어려웠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관종'이 되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서 또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력을 만들 수 없었다. 나는 매번 과거의 나를 복사해서 오늘의 나를 살고 있었고, 그걸 극복하고 싶었는데, 다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또라이를 롤모델로 삼았지 않은가. 내가 본 또라이들은 기꺼이 관종이 되었다. 자신의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공개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다. 남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그 '남들'에 소속된 나는 심지어 그들을 동경하고 있으니 시도해봐도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부끄러워하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내 목표를 다지고, 오글거리는 글도 쓰고, 내 소개도 했고 내 생각도 담았다. 해보니 별 게 아니었다. 그리 하고 나서 내가 확인한 것은, 역시나 남은 나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남에게 그런 것처럼. 몇 번을 반복하니 조금 더 당당해지기도 했다. 당당함도 훈련이 되었고, 나를 드러내는 내가 나를 드러내기 부끄러워하던 나를 이겼다.


또라이의 길에 시작점을 찍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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