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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Mar 04. 2021

이런 집주인과 중개업자만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남의 집에 살면서 느꼈던 것들

 

까마득한 대학 선배를 만났습니다



 서울대입구역 근처 오피스텔 월세 계약을 파기하고 아예 다른 지역인 강남의 집을 둘러봤습니다. 강남에는 오피스텔만 있는 줄 알았는데 괜찮은 빌라가 꽤 많았고, 비싸긴 했지만 회사와 가깝고 내부도 넓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에 가계약금을 걸었습니다. 며칠 뒤, 집주인을 만났습니다. 이번에 만난 집주인은 호쾌한 분이었습니다. 집주인께서는 47년생이셨는데, 그 시절 최고의 엘리트로서 대한민국의 성장과 함께 사회적, 경제적 성공을 일궈내신 분이셨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집주인 분과 제가 같은 대학 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월세 보증금 대출을 받아도 되겠느냐고 여쭤보니,


 "원하는 대로 진행해요. 그리고 알지? 내가 어떻게 하든 속이려는 사람은 어떻게든 나를 속이지. 반대로 속이지 않을 사람은 속이지 않지. 설령 대출을 안 받는다고 하더라도 보증금을 떼먹는 일은 없을 거예요. 동문의 명예를 걸고 내가 약속할게요."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부동산 공인중개사도 서류를 확인하면서 이렇게 재무상태가 건전한 건물은 강남에서도 찾기 힘들다고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살게 될 빌라는 대지면적 130평에 20세대가 넘게 살고 있는 건물이었고, 꼼꼼한 관리소장님이 계셔서 관리가 잘 되고 있었습니다. 관리소장님도 같이 오셨는데, 이것저것 안내해주시면서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사일은 대출을 고려하여 3~4주 뒤 손 없는 날인 1월 21일로 설정했습니다. 월중에 들어가는 경우 보통은 계약일자를 기준으로 월세 지급일을 정하는데, 여기에서는 첫 달의 월세는 일할로 계산하여 이사일에 지급하고, 그다음 월세부터는 매달 1일에 보내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원칙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해주셔서 더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서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편견과 구김 없이 멋진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집주인과 교류할 일은 없으나, 존경할 만한 분을 집주인으로 만났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필요한 건 다 해줘야지.
열심히 사는 훌륭한 젊은이가 들어오는데."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방을 빼고 12월 24일에 서울로 이사를 하려고 했는데, 계약이 파기되면서 전입신고를 못한 상태였습니다. 부산에서 새로운 전입자가 전입신고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퇴거 신고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빨리 전입신고를 해야 부산에서도 퇴거 처리가 되고, 다음 세입자도 부산 전셋집으로 전입신고를 하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집주인께 양해를 구하고 이사일을 3일 뒤로 하여 월세 보증금 대출 없이, 제가 갖고 있던 돈으로 보증금을 부치고, 1월 2일부터 거주를 하는 것으로 계약서를 새롭게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전입신고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말씀드리니, 전입신고를 미리 해도 상관없으니까 계약서를 다시 쓰기로 한 다음날인 12월 29일에 바로 전입신고를 하라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월세를 일할로 계산해서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에 해당하는 월세를 추가로 이체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전입신고는 미리 해둬도 상관없고, 실질적으로 2일부터 살 거니까 2일부터의 월세만 이체해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번거롭게 계약서를 다시 쓰게 해 드린 것도 죄송한데, 여러 모로 양해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귀찮게 해드려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니 집주인과 관리소장님께서,
"필요한 건 다 해줘야지, 열심히 사는 훌륭한 젊은이가 들어오는데."
 라고 말씀해주셔서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중개업자를 보는 눈이 높아졌습니다



 집주인께서 좋은 분이신 것도 참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인데, 중개를 맡아주신 D 과장님도 좋은 분이셨습니다. 집을 보러 돌아다닐 때에는 제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집마다 임대인에게 월세를 깎을 수 있는지 물어봐줬고, 임대인이 월세를 깎아줄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말을 바꾸면 "사장님이 분명 깎아주신다고 해서 고객님 모시고 왔는데, 말을 바꾸시면 안 되죠."라고 하며 임차인 입장에서는 고마운 수고를 해주었습니다. 어머니와 이모가 저와 과장님 뒤에서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일을 너무 잘한다, 진짜 건실한 청년이다'라며 소곤대셔서 좀 부끄럽긴 했지만 저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집을 보러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과장님이 근처에 괜찮은 쿠키 집이 있다며 나중에 가보라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맛있는 쿠키 집을 알려주시다니 참 친절하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계약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잠시 사라지셨길래 어디 가셨나 했더니 직접 쿠키 가게에 가서 쿠키를 사 오셨더라고요.

 "고객님,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그 쿠키예요. 드셔 보세요. 제가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쿠키를 건네주시는데, 아마 제가 동공 지진을 선보였던 것 같습니다. 월세방을 구하면서 꽤 긴 시간 곤혹을 치렀던 저에게는 정말 감동적인 서비스였기 때문입니다. 일 처리만 잘해줘도 감사할 지경인데, 이런 것까지 챙겨주다니, 혹시 이전과 같은 일이 또 생길까봐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던 저도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개수수료는 33만 원이었습니다. 대학가에 6평 내외의 1000/60짜리 집을 구할 때 55만 8천 원을 들였는데, 직장 근처 9평 되는 3000/73인 집을 구할 때의 중개수수료가 33만 원인 상황이니, 일처리를 깔끔하게 해주신 D 과장님께 55만 8천 원을 드렸으면 아깝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사무소 대표의 계좌로 중개수수료를 이체하면서 과장님 계좌로 따로 수고비를 더 드리려고 했는데,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셨다면 그걸로 되었다며, 한사코 거절을 하셔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Tall 사이즈 다섯 잔을 기프티콘으로 드렸습니다.

 제가 좋은 이야기를 과하게 많이 해버렸지만, 지방에서 올라와 심상치 않은 일을 겪고 좋은 분들을 만나니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 진짜 제 자취방으로 이사를 하고, 착하게 사는 일만 남았습니다.




* 본 브런치북은 내용을 상당 부분 보충하여 동일한 이름의 도서로 출간되었습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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