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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Mar 12. 2021

집은 경험재입니다

남의 집에 살면서 느꼈던 것들

 

 넓은 집에 살아야겠어요

 


 강남 빌라에 살면서 깨달은 것은 집이 무지 클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넓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지 큰 집을 소유하거나 그런 곳에 거주한다는 것은 꽤 부자라는 것이니 큰 집에 살 만큼의 경제력을 갖고 싶기는 합니다.

 집이 넓으니 집의 어느 한쪽 구석에 앉아 나를 둘러싼 공간들을 바라볼 때 훨씬 더 여유로운 마음이 생깁니다. 회사의 어른들이 종종 저에게 '원룸에 살지 말고 소형이라도 아파트에 살아봐라', '역에서 좀 멀어도 소형 아파트에서 살아봐라. 마음가짐이 다르다'와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가능하면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만 이제 갓 입사했는데요...'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막연하게 원룸보다는 아파트가 좋다는 것도 알고, 좁은 집보다는 넓은 집이 좋다는 것도 알았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그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좁은 집에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좁은 곳에 살면 실컷 집을 구해놓고 밖으로 나다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이 마음 편한 공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답답한 공간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 안에서 나만의 멋진 세계를 만들고 거기에 빠져들 만한 상상력이 없는 저에게는 더 그랬을 것입니다. 발코니라는 공간이 있으면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없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어머니와 이모가 넓은 발코니를 보고 환호하셨던 이유도 깨달았습니다.


 집이 넓으니 꾸미는 재미도 있습니다. 저는 집을 잘 꾸미는 분들이 부러웠습니다. 집은 나만의 소중한 공간이고 내 손을 거쳐 나만의 취향을 결집한 곳으로 탄생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저는 아기자기한 소품을 활용하는 것을 잘 못하고 그런 것들에 먼지가 쌓이는 것은 싫어하면서 닦는 건 또 귀찮아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집이 커야겠다는 얄궂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종 매체를 통해 잘 꾸며진 집을 보면서 '30평대 집을 사게 되면 이렇게 꾸며야지!', '이런 벽을 세울 수 있단 말이야?', '이렇게 예쁜 조명을 둘 수 있어?'라는 생각을 종종 했지요. 원하는 좋은 집에 가기 전까지 열심히 이렇게 저렇게 꾸며볼 생각입니다.



집을 나서면 무엇이 있는지



 부산에서 살 때에는 해운대 바닷가 근처에 살았습니다. 주중 아침에는 이따금씩 동백섬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서 하루를 계획했고, 주말에는 해운대 바다로부터 시작해서 광안리 바다까지 걸어가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해운대에서 광안리가 아닌 반대편으로 걸어가면 송정 바다도 있고, 청사포라는 곳도 있었는데, 아주 마음을 굳게 먹은 날에는 경관이 좋은 그곳을 따라 3만보를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저녁에는 야경을 보면서 노래를 들었고, 스스로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서울로 오고 나서도 주변 근린공원이나 산책로를 찾아다니고, 남산이나 인왕산 같은 야트막한 산에도 가보곤 합니다.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이 저에게 꽤 좋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냥 집 주변을 돌아다녀보기도 합니다. 근처에 코를 절로 킁킁거리게 되는 빵집, 햇볕에 드러난 꽃이 사랑스러운 꽃집이 있는지, 나를 즐겁게 해 줄 것들을 탐색하러 다니지요. '나중에도 꼭 치아바타가 맛있는 빵집이 근처에 있는 집에 살아야지' 생각하기도 하고요. '내가 집을 나서면 무엇이 있는가'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오늘도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집은 경험재이다



 저는 해외여행을 가보기 전까지 해외여행을 다들 왜 그렇게 가고 싶어 하는지 몰랐습니다. 나는 여행에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이라고 착각했지요.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가보고서야 '여행이 이런 거구나, 이렇게 흥미롭고 색다른 멋진 기분을 안겨주는 거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집이 넓으면 청소하기 귀찮기만 하지 뭐 되게 좋은 점이 있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넓은 집에 살아보며 넓은 집의 가치를 깨달았고, 회사에서 가까운 집에 살아보면서 직주근접성이 높은 집의 좋은 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경험재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집을 거래하고 꾸며보고 살아보면서 다양한 나의 세계를 경험해나갈 수 있으니까요. 단순히 월세를 산다고 생각하면 쓰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집 또한 경험재라고 생각하면 시야가 조금 달라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월세를 내가 사는 집과 그 집이 우뚝 서있는 동네를 경험하면서 미래의 나와 내 공간이 어떨지 상상해보고 조율해보는 것에 대한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하고 가까워지는 것이 저에게는 꿈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 살고 싶은지에 있어 집이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 배경이 바로 집이니까요. 그리고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이 그러하듯 목표를 세우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면 오늘의 나 또한 즐거운 집에서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본 브런치북은 내용을 상당 부분 보충하여 동일한 이름의 도서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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