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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솜 Nov 25. 2024

아버지가 글을 쓰신 이유

'맏며느리의 변명'을 마치며

아버지는 2016년 1월 병석에 누우셔서 그해 8월 돌아가셨다. 당시 89세였다. 연세에 비해 삶에 적극적이어서 그렇게 쉽게 가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제 점령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오뚝이같이 살아오셨다. 밥상 앞에 앉으면 하실 말씀이 많으셨다. 극한 상황을 견뎌오신 아버지의 말씀이 잔소리로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몸져누우시고 한 달쯤 지나 아버지는 나에게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있는 종이 한 뭉텅이를 주시며 책을 내고 싶다고 하셨다.      


나의 첫마디는 “요즘 책을 누가 읽는다고....”였다. 당시 나는 글쓰기에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논문을 쓰면서 글 쓰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훌륭한 글을 쓰지도 못하면서 뭐 하러 힘들게 글을 쓰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글들이 난무하고 있고 나까지 별 볼 일 없는 글을 보탤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던 차였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순간적으로 아버지께 던진 것이다. 


분위기를 바꿔 천천히 아버지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 가장 힘들었을 때가 전쟁 중에 먹을 것이 없어 고향사람들을 살리려 보리 한말을 구해 산을 넘던 기억이라고 하셨다.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가장 경계하셨다. 이런 이야기가 글에 담겨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아버지는 너무 힘든 삶을 사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삶을 자식들이 겪지 않도록 기회만 있으면 말씀하셨다. 하지만 자식들이 듣기에 아버지 말씀은 대부분 잔소리로 들렸다. 


일단 원고를 집에 가져왔다. 손으로 꾹꾹 눌러쓰신 원고를 보고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은 글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노쇠한 몸으로 한 자 한 자 눌러쓰신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굳이 이렇게 쓰셨을까?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이런 마음을 다시 한번 쏟아내어 자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글을 컴퓨터로 쳐서 책으로 엮었다. 

아버지는 한결 편안해하셨다.

아버지의 두 번째 책이었다. 


글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쓰기도 하지만 

내 안에 있는 것을 모두 쏟아내 홀가분하게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서 쓴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책 한 권은 될 거야.’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어찌 책 한 권만 될까? 누구나 삶이란 원래 녹녹하지 않다. 글로 쓰느냐 쓰지 않았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 또한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려 마음을 먹었을 때 우선 나의 이야기를 했다. 정리하고 다 떨어내는 기분으로 글을 썼다. 지난 4월부터‘나의 주거사’라는 제목으로 20회에 걸쳐 그동안 살았던 집에 관한 이야기를 이번에는 ‘맏며느리의 변명’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결혼하고 10년을 지방에서 살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손을 놓을 즈음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아버님은 은퇴하시고 어머님은 살림에 손을 놓으실 시점이었다. 시부모님이 살아오신 삶의 틀을 간직하신 상태에서 내가 그것을 지키는 형태로 생활해야 했다. 내 주장 없이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요즘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시부모님을 보시고 3대가 사는 대가족의 삶은 그 강도가 육아 아이템 10개 정도였다. 집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은 삼시 세끼를 차리는 일은 기본이고 명절의 차례상 생신상 차리기 주말이면 모이는 형제들 수시로 방문하시는 일가친척을 위해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나의 일은 거의가 음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훌륭한 삶이라 생각했다. 배울 만큼 배우고 사회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던 시절 손에서 물이 마를 날 없고 항상 부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생활에 나의 처지가 황당하다고 생각된 적도 많았다. 남들이 보기에도 요즘 같은 세상 누가 그렇게 사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나는 뭐든 것을 좋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마음은 편해졌다. 일은 많고 돈은 생기지 않는 대가족의 집안 살림은 근시안적인 관점에서는 손해인 것 같아도 거시적으로 보면 좋은 점도 많았다. 


함께 살면 경제적이다. 

주식을 하거나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발로 뛰며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얼마나 더 잘 살 수 있었을까?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정해진 생활비를 아껴 쓰는 방법 밖에 없다. 많은 식구 끊임없이 해 먹이면서 식비를 줄이는 요령이 생겼다. 계절에 따라 만들어 놓아야 하는 저장식품을 만드는 일은 매우 유효했다. 야채는 수확시기가 정해져 있다. 생산량이 많은 시기는 영양이 풍부하고 가격이 싸다. 김장문화나 장아찌를 담그는 문화는 많이 생산되는 시기 갈무리 해 두는 조상들의 지혜다. 


항상 사람들이 모이니 재미가 있다. 

주말이면 동서들이 와서 특별히 친구를 만나러 가지 않아도 수다 떨 수 있고 사촌들이 자주 모이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많은 형제 사이에서 자라는 효과가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교육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부모가 일일이 가르치지 않아도 보고 배우는 것이 많아 스스로 잘 크니 너무나 고맙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평균적인 생활은 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은 잘 먹고 잘 자는 것이다. 삼시세끼 정시에 밥을 먹고 정시에 자고 많이 움직이니 특별히 건강관리를 하지 않아도 식구들이 건강하다. 


하지만 문제는 주부이면서 며느리인 내가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 좋은 세상에 아무리 좋은 점이 많다 해도 많은 식구 먹이는 일을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누구나 어려운 시기는 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어려움을 피해 가면 더 큰 어려움이 닥친다고...  어려움은 피해 갈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겪으며 그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고...  이 시간을 지내고 나니 인생의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남자들이 군대 다녀오면 더 단단해지듯이 나 또한 이 시기를 지나면서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마음도 넉넉해졌다.



                      

처음 글을 쓸 때는 제사를 주제로 맏이로서의 경험을 적어보려 했다. 나의 17대 조상 중 한 분이 조선시대 초기 절개 곧은 사림의 한 사람이었던 한재 이목(1471~1498)이다. 할아버지는 연산군 시절 우리나라 4대 사화 중 가장 먼저 일어난 무호사화 때 화를 입으셨다. 가족은 공주 산골에 들어가 자손이 번성하였고 훌륭한 조상의 정신은 자손들이 살아온 힘이었다. 특히 현대 교육을 받으신 아버지는 유교의 선비정신을 지키려 노력하셨다. 따라서 제사는 엄숙하고 진지했다. 


결혼하니 시댁에서 제사란 축제였다. 시아버지의 고향은 개성이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살아계신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명절이 되면 차례를 지냈다. 이남으로 피난 온 일가친척이 모였다. 사람들이 모이면 당연히 음식이 필요했다. 음식이 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성음식은 손이 많이 가고 종류가 다양했다. 제사의 중심에는 맏며느리가 있었고 맏며느리는 할 일이 많았다. 


먇며느리는 결혼과 함께 주어진 권리보다 의무가 많은 직책이다. 나는 요리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일을 잘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더 힘이 들었다. 그렇다고 가문 있는 종갓집도 아니어서 내 일을 포기할만큼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돌아보면 그저 허덕이며 살아왔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름 뭔가 변명을 해야 했다. 제사를 지내는 일을 주어진 관습을 따르기보다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의지였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인터넷에는 제사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젊은 사람들의 의견으로 넘쳐난다. 제사가 종교냐 아니냐 미신이냐 아니냐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여야 하고 사람들이 모이면 음식을 먹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 제사를 지내면서 많이 부족하지만 주어진 일을 가능한 한 이타적인 방향으로 하려 노력했다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이 나의 이번 '맏며느리의 변명'이다.    


누구나 삶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누구나 변명거리는 있다.


이 글을 누가 읽는다고....

사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오래 하고 싶지는 않다.

변명이 길어지면 안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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