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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노무사 Sep 13. 2021

시대는 변했고, 앞으로 더 변할 것

꿈이 있는 사람

근로기준법 제74조 제7항에서는 임산부의 보호를 위해 “사용자는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령보다 우선인 결재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임신한 지 6주가 채 되지 않아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만원 버스를 타고 출근했던 시절, 6주 동안 만원 버스를 피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습니다. 당연히 바로 팀장님께 알렸고, 단축근무 신청을 했죠. 산부인과에서 임신 사실 확인서까지 발급받아 온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팀장님께서 국장님 결재 나야 사용 가능하다고 하셨어요. 그날 국장님은 외근이었는지 휴가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이없어서 눈물까지 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울 이유가 없었는데, 임신은 사람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게 합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서 인사팀 선배를 찾아가 하소연했고, 부장님께 말씀드려 국장님 결재 없이 10시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항의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국장님 결재가 날 때까지 저는 단축근무를 사용하지 못했겠죠. 법령보다 국장님의 결재가 우선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실무적인 문제들 때문에 관련 법이 개정되었으며, 근로자는 근로시간 단축 개시 예정일의 3일 전까지 임신기간, 근로시간 단축 개시 예정일 및 종료 예정일, 근무 개시 시각 및 종료 시각 등을 적은 문서와 의사 진단서를 첨부하여 회사에 제출해야 합니다.



세상의 변화를 인정하기

 

 10시에 출근하는 기분은 매우 좋았어요. 우선 버스에서 앉을 수 있었고, 차도 밀리지 않았습니다. 출근시간 에너지를 절약하니 자리에 앉아서도 좋은 기분이 유지되었죠. 사실 만원 버스를 경험한 날은 기운이 없어 오전에 일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임신 후 12주까지 10시 출근 5시 퇴근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퇴근길에 다른 부서 부장님과 마주쳤습니다.


“집에 가는 거야? 우리 때는 임신해도 철야 야근 다 했는데, 진짜 세상 좋아졌어.”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세상이 당연한 시대로 변하기도 했죠.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되어 출산휴가 3개월 후에 바로 복귀하는 워킹맘들이 있었습니다.(물론 지금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육아휴직 1년을 사용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대는 변했고, 앞으로 더 변할 것입니다. 스스로 세상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필요가 있을까요. 애 엄마라 잘할 수 없을 것이라는 구시대적 사고 때문에 제 꿈을 포기한다면, 애 엄마라는 편견에 부응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딸을 키우지만 딸이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꿈을 포기한다면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려고 하겠죠. 아이를 봐주시는 저의 친정 부모님의 심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엄마라는 이유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기꺼이 본인들의 시간을 내어주시는 거죠. 그리고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이의 꿈 응원하기


 여섯 살 지솔이는 승부욕이 강합니다. 엄마 아빠와의 대결에서는 무조건 자기가 이겨야 하는데, 친구와의 경쟁은 알아서 피합니다. 시크릿 쥬쥬 놀이에서 절대 쥬쥬가 되려고 하지 않고, 엄마놀이에서는 이모나 언니를 자처합니다. 항상 주인공이 되지 않고 친구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지솔이를 보면 괜히 속상한 마음이 듭니다. 충분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이인데 벌써부터 남의 눈치를 너무 보는 게 아닐까 해서요.


"지솔아, 왜 지솔이는 엄마 안 해?"

"내가 엄마 하면 친구 속상하잖아. 나는 친구들이 우는 게 싫어. 그냥 내가 언니나 애기하면 되지 뭐."


 지솔이 친구 중에는 벌써 한글을 아는 친구들이 있고, 그중에는 글씨를 쓰는 친구도 있습니다. 하루는 그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너랑 놀 기분 아니야."라고 쪽지를 남겼다고 합니다. 한글을 모르는 지솔이는 당연히 자신의 기분을 쪽지로 남길 수 없겠죠. 글씨는 모르지만 친구의 기분을 헤아릴 줄 아는 지솔이가 기특합니다.


 한글 아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길래 공부를 시켰더니 아이가 스트레스를 엄청 받더라구요. 일주일 만에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부하고 있었던 노동법 책을 읽어주었죠. 그리고 같이 OX 퀴즈를 맞추며 놀았습니다.


"지솔아, 글씨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별로 없어. 근데 노동법 아는 애기는 너밖에 없어."


 승부욕이 있지만 공부하기 싫은 지솔이의 꿈은 무엇일까요, 그 꿈이 무엇이든 자신과 세상을 함께 이롭게 할 수 있다면 응원하고 싶습니다. 공부 잘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시대는 변할 것입니다. 저는 공부 잘해도 남의 가치를 무시하는 사람이 되느니,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아이를 키우고 싶어요. 치열하게 사는 저를 보면 주변에서 아이 사교육을 엄청 시킬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싫어하는 일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먼저 아이가 닮고 싶은 사람이 되고, 아이가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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