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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노무사 Sep 02. 2021

애 엄마가 왜 아직도 퇴근을 안 했어

미안하고 싶지 않아서

 노무사가 되기 전, 기업 교육담당자로 근무하였습니다. 교육담당자는 다른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자부심만으로 조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한참 업무에 자신감이 생기던 시절, 직무 순환원칙이라는 명분으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습니다. 인사부서에 있었음에도 그 흔한 인사 면담 한 번 없이 인사 발령 당일 전화를 받았죠. 적성과 경력 모두 맞지 않은 업무에서 성과는 당연히 없었고, 그때 찾아온 임신은 정말 축복이었습니다.


 육아휴직 중 교육담당자 자리를 제안받았습니다. 육아휴직 7개월 차였고, 아이는 9개월이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결국 조기 복귀를 선택했습니다. 돌도 안 된 아이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결혼하기 전부터 했던 업무라 무엇보다 애착이 가는 업무였고,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년간 공백 후 복귀하였으니 당연히 회사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때의 관심은 저의 업무가 아니었어요. 선배들은 애는 몇 개월인지, 애는 누가 봐주는지 물었고, 후배들은 아이 키우는 게 어떤지 얼마나 힘든지 물었습니다. 저에게 궁금한 것은 저의 육아 계획이었으며, 회사의 교육계획은 아니었습니다. 회사는 교육담당자에게 거는 기대보다는 육아맘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들이 가득한 정이 넘치는 곳이었고, 그 관심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 답답했습니다. 일하고 싶어 조기 복귀했는데, 저의 업무성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거든요.


 오랜만에 돌아온 회사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래도 제가 하는 일을 중요하다고 생각해주는 상사가 있어, 나름 즐거웠어요. 갑작스러운 부서 이동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육아로 쉰 1년 동안 업무능력이 떨어졌을까 봐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휴직기간 동안 어떤 일이 진행되었었는지, 전임자가 미쳐하지 못한 일이 있을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 되는지 최대한 빨리 알고 싶었습니다.


 하루는 업무 흐름을 파악하다 퇴근 시간을 놓쳤습니다. 그래 봤자 30분이었지만요. 지나가시던 부장님께서 저를 보시고 놀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애 엄마가 왜 아직도 퇴근을 안 했어?”


 4년이나 지났는데 저 말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애 엄마라고 불려서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어요. 나를 기다리는 아이를 잊고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안해졌습니다. 엄마가 일을 좋아하면, 일을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면 아이한테 미안한 엄마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요?


“요즘 아이들 방학이라 제가 등원시키는데, 정말 엄마들이 힘들어요.”


 우연히 남자 선배와 엘리베이터를 둘이 타게 되었습니다. 전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는데, 불편하셨던지 저렇게 한마디를 던지셨습니다. 등원은 엄마 몫이라는 당연한 전제로 말씀하신 것 같은데 저는 침묵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들은 정말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아빠들도 힘들잖아요. 아이를 바르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은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고, 엄마 아빠 할 것 없이 그 역할의 책임은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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