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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노무사 Feb 11. 2022

워킹맘의 일의 의미

워킹맘(working mom)이란 문자 그대로 일하는 엄마라는 뜻입니다.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의 자녀, 누군가의 배우자, 누군가의 아버지일 텐데 굳이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이유는 다분히 사회적인 의미를 내포하겠죠. 저 역시 워킹맘입니다. 저는 워킹맘을 단순히 일하는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워킹맘이란, 일을 하면서도 온전히 양육의 책임을 지는 동시에, 직장에서는 애 엄마라는 편견에 시달려야 하는 존재입니다.  


최근에 방송인 장영란씨가 나오는 TV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장영란씨는 방송에도 출연하고, 병원의 경영담당 이사로 근무하고, 집에 와서 아이를 위해 요리를 하는 완벽한 워킹맘이더라구요. 심지어 날씬하시고 예쁘더라구요. TV에 출연하는 방송인의 외모와 모든 워킹맘의 외모를 비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전 장영란씨의 대단함에 놀라면서도 집안의 화목함을 위해 분주히 노력해야 하는 워킹맘의 현실이 슬프기도 했습니다. 온전한 나를 위한 시간은 어디에도 없거든요. 저는 거의 매일 칼퇴를 합니다. 칼퇴하고 집에 와서 씻으면 7시 정도에요. 그럼 친정 어머니가 해주신 저녁 밥을 먹고, 고생하신 엄마께 죄송한 마음에 설거지라도 합니다. 엄마가 가시면 아이와 산책을 나갔다오거나, 파닉스 영어 공부를 하거나 그림 그리기를 하면 어느새 9시가 됩니다. 아이를 씻기고 책 두 권을 읽어주면 10시가 되고, 아이를 재우다 제가 먼저 잠들어서 후회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이유


 4학기 수업에서 일의 교육학이라는 수업을 들었습니다. 일의 교육적 의미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수업이었습니다. 일의 교육적 의미를 이해하고 일을 통해 가치를 창출해내는 현대적 장인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발견하신 장인들의 특징은 일을 통해 배우고, 창의적으로 일하며, 일에 몰입하고 일을 사랑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만을 위해 일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먹고살기 위해 일했다면 쉽고, 빠르게 많이 벌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을 해도 상관없겠죠. 사실 저도 일이 좋습니다.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 일의 결과로 얻은 성취감은 저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이거든요.



워킹맘의 일의 의미 


 제가 일을 아무리 자아실현의 도구라고 생각하더라도, 워킹맘의 직업 선택은 자아실현만 고려되지는 않습니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 조금이라도 눈치를 덜 볼 수 있는 환경이 나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곳보다 우선되기 때문입니다. 직업 선택뿐만 아니라 경력유지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아플 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워킹맘은 경력단절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아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국공립어린이집으로 어린이집을 바꾸었습니다. 적응기간 중 아이에게 어땠냐고 물으니 말도 잘 못하는 아이가 '슬펐어.'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저는 또 아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위해 이렇게 아이를 고생시켜야 하는지 후회의 연속이었죠. 워킹맘에게 일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내 아이를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죄책감을 강요하는 사회


 첫 직장에서 장기근속하였으나, 노무사가 되고 나서 오히려 회사를 자주 옮겼습니다. 일과 가정이 조화롭기 위해서는 출퇴근 거리를 고려하여야 했고, 노무사로서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일도 잘할 수 있는(업무 다양성과 자율성이 높은) 곳에서 일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면접에서 돌아오는 피드백은 아이가 있는데 괜찮겠냐라는 말이었습니다. 어떤 대표님께서는 아이를 키우는 시간도 소중한 시간인데 그 소중함을 뺏을까 봐 걱정이 된다는 얘기도 해주셨죠. 저는 아이가 네 살 때 대학원에 입학했고, 다섯 살 때 노무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육아를 제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등한시하지도 않았기에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면접 때마다 계속되는 좌절 경험은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들고, 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한 대통령 후보가 말했던가요?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구요. 전 계속 계속 되뇝니다. 제 남편이 노무사가 되어 면접을 보았다면 육아와 업무를 병행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을까. 



그럼에도 성장하기 


 주변의 간섭에 휘둘리며 사는 것도 어쩌면 특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가 된 후 어른이 되었다는 책임감, 30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주변을 신경 쓸 겨를도 없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삶이 펼쳐지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오징어게임에 출연하신 오영수 배우를 떠올립니다.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 골든 글로브의 상을 받는 날이 온 것처럼요. 엄마의 역할과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소홀히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항상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남자가 아닌 여자, 싱글이 아닌 기혼, 20대가 아닌 30대, 혼자가 아닌 엄마인 노무사... 오늘 하루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성장했습니다. 몸이 힘들어도, 죄책감이 들어도 일을 하면서 나의 노력이 의미 있는 일이 된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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