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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노무사 May 13. 2022

왜 나는 경력단절을 선택하지 않을까

드디어 저희 집에도 그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무서운 그분의 이름은 역시나 코로나입니다.

사실 나는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고, 회사에서도 마스크를 잘 쓰는 편이었거든요. 법인에서 모든 사람들이 확진될 때 혼자 감염을 비껴가는 행운을 겪기도 했습니다. 지난 2년간 몸이 안 좋을 때도 있었지만 코로나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러나 아이의 쉰 목소리와 고열은 저를 불안하게 하였고, 신속항원 검사 결과는 코로나 확진 판정이었습니다. 다행히 병원에서 타 온 약을 먹고 아이는 열이 내렸고 바로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그다음 날부터 저에게 단계적 코로나 증상이 발현되었습니다. 아이와 하루 차이로 확진 판정을 받았네요. 1,2일 차는 39도가 넘는 고열이 계속되었습니다. 열을 내려야 했지만 몸은 너무 추워서 겨울이불을 두 개나 덮었어요. 3,4일 차에는 기침이 시작되었습니다. 자다가 기침 때문에 잠을 깨서 수면의 질이 너무 좋지 않았죠. 5,6일 차에는 종아리 통증과 인후통을 겪었습니다. 격리 기간 7일 동안 매일 이불과 한 몸이 되어 잠만 잤던 것 같아요. 격리 해제 3일 차인 지금은 그래도 꽤 좋아져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코로나였지만 일했던 이유


직원이 코로나에 확진되었을 때 인사관리에 대해 자문하는 회원사에게 전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차 외 유급휴가를 주시면 회사에서 유급휴가 지원금을 받으실 수 있고요, 무급휴가 처리하시면 직원분께 생활지원금 신청하라고 안내해주시면 됩니다.”


이 대답은 기본적으로 격리기간 동안 직원에게 휴가가 부여되어야 하며, 유급인지 무급인지의 여부만이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전 격리기간 동안 휴가를 쓰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업무를 조정해주셨고, 아이케어와 휴식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거든요. 그럼에도 마음이 참 편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내가 아니어도 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휴가를 쓰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노무사가 되어보니 작은 조직에서 한 명의 부재는 다른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회사의 부담도 이해가 되었고요. 코로나로 인한 아픔 속에서 그런 부담이 되는 게 싫어서 맡은 일 두 개는 마무리하겠다고 하였고 열이 나는 2일 차 노무 코칭을 진행하였습니다.


“10인 이상 근로자 사용하시면 취업규칙 제정, 신고하시는 건 필수입니다. 사장님들께서 취업규칙 신고 자체를 부담스러워하시는데 사실 노무 이슈 발생하면 취업규칙이 사장님들을 보호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말하면서 제가 무슨 말하고 있는지 정신이 몽롱해지고 가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30분은 금방 지났고, 코칭을 받으신 분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코칭 후기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또 아팠죠. “이렇게 상세히 코칭 리뷰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코칭 진행을 도와주신 업체 대표님께서 남기신 메일을 보고 안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또 아팠죠. 아이가 아프고 내가 아프고 지난 일주일이 참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일을 손에 놓지 못하고 잘하려고 노력하는 제 자신이 참 웃기기도 했죠. 누구도 저에게 강요하지 않았는데요. 



경력단절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


왜 일할까? 직장을 다니는 사람, 직업을 가진 성인이라면 일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선 생활을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럼 왜 이 일을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먹고살기만을 위해 일했다면 굳이 이렇게 힘든 시기에 안정적인 회사를 나와서 어려운 시험에 도전하고, 법인을 이직하며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최근 제가 회사를 나와서 잃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요. 낮아진 연봉, 함께하는 동료, 회사의 타이틀, 아이 교육보조비, 2년마다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권리 등 정말 많은 것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쓴 돈, 잘못 투자해서 잃은 돈, 수험공부를 하며 잃은 체력, 잦은 이직으로 인한 불안정성 등은 지금도 저를 압박하고 있죠. 그리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늘 어렵습니다. 특히 아이가 아플 때는 더욱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경력을 단절할 생각이 없습니다. 항상 일은 저를 힘들게 했지만, 그때마다 저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찾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의미 없이 하기 싫은 일만 하면서 존버 하는 것은 제가 가장 취약한 부분입니다. 저는 가치 있게 살고 싶습니다. 일을 하면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싶고 내가 하는 일의 결과가 타인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일하는 모든 엄마들은 육체적으로 힘이 듭니다. 도움받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엄마 역할을 대신해주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럼에도 경력을 유지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요. 



당연함을 인정하지 말자


전 직장에서 오래 일했던 여자 선배가 회사를 그만두실 때 '육아'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당시 미혼이었던 저는 육아는 참 힘들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실제 퇴사라는 것을 해보니, 퇴사 이유는 단 하나일 수 없습니다. '육아'는 표면적인 사유일 뿐이며 '육아하는 직장맘을 힘들게 하는 가부장적 조직문화' '일하는 엄마가 느끼는 경력의 한계' '일과 삶의 불균형으로 인한 우울' 등 내재된 사유는 수백만 가지 일 것입니다. 일하는 엄마가 육아라는 사유로 그만두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더 이상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시 선배의 퇴사를 당연하게 생각한 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많이 아프니 아이가 편지를 써서 주었습니다. 불편해도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 아이에게 위로를 받습니다. 삶은 늘 불편합니다. 하지만 기다리면 이런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은 날들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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