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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노무사 Sep 24. 2021

나이답게 말고 엄마답게

 저는 2002년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아직도 2002년 월드컵이 눈에 생생합니다. 집이 은평구였기 때문에 상암월드컵경기장이 가까웠어요. 하굣길 무조건 상암으로 가서 거리응원을 했죠. (축구가 재밌기도 했지만 특별공연을 해주는 연예인 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갑자기 비가 와서 친구가 빨간 두건을 머리에 씌워주었습니다. 비에 젖은 두건 색이 빠져, 하얀 교복이 빨갛게 물들어서 놀림을 받았던 기억까지도 생생합니다.


“엄마, 나 2002년이 너무 생생한데. 이게 벌써 20년 전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
“야 나도 60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마음은 소녀 같다.”


 최근 자주 듣는 말이 ‘너는 나이가 있으니까’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나이답게 사는 방법에 정답이 있을까요? 저의 10년 전을 돌아보면 지금과 달라진 것은 외모일 뿐인 것 같아요. 20대임에도 대기업 임원인 사람도 있고, 30대이지만 학교를 다니는 사람도 있으며, 40대에도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독립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이답게 사는 기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말을 아끼게 되고 소극적인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나다운 게 뭔데?


 최근 세상은 나이답게 말고 나답게 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또 나다운 것은 뭔지 고민하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는 너무 다르거든요.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나’는 성실하고 끈기 있는 사람인 반면, 신랑이 생각하는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현명한 사람이며, 친구가 생각하는 ‘나’는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전 끈기 없고(심지어 게으름) 책도 좋아하는 책만 읽고 열정 따윈 없고 그냥 불안감에 수동적으로 사는 사람인데요.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남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쉽게 우울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엄마답게


 ‘나이답게’ ‘나답게’ 사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저는 ‘엄마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산후우울증이 왔을 때 변해버린 몸 때문에도 슬펐지만, 가볍게 살고 싶었는데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괴롭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너무 성급하게 엄마가 됐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엄마가 되니 모든 말과 행동을 가볍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저의 말과 행동을 통해 세상을 배웁니다. 어느 날 지솔이가 ‘짜증난다’는 표현을 했을 때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저의 철없는 말투를 후회했죠. 엄마답게 산다는 것은 ‘책임감 있게 산다’는 것입니다. 제가 뱉은 말, 나의 행동이 아이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입니다. 제가 안정적인 것보다 힘든 길을 선택하는 이유는 저의 성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언제든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은 모든 부모의 소망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이가 꼭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열심히 공부했지만... 공부가 아니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아이가 외형이 훌륭한 사람보다는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렵게 살기를 원하지 않지만, 도전적으로 살길 바라며, 안정적으로 살기를 원하지만 열정 없이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참 어려운 조건이네요.  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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