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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노무사 Oct 24. 2022

일 하는 사람이 행복한 조직

어떤 노무사가 되어야 할까

“왜 노무사가 되고 싶으셨어요?”     


오랜 직장 생활 후 노무사가 된 저에게 많이 물어보십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죠. 조직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발견해도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부분도 많습니다. 회사에 속해있을 때는 그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어요.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나의 노력을 사람들이 알아주고 회사도 언젠간 좋게 변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기대만큼 실망이 컸던 것도 사실이죠. 노무사가 되고 싶었다기보다는 학습된 무기력을 스스로 벗어나고 싶었던 의지가 컸습니다.  


    


성 안의 사람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현대인의 삶은 치열합니다. 회사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여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미생에서 부장님이 말했던가요? 밖은 지옥이니 회사에서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전쟁터 같은 회사를 경험하지는 못했기 때문인지 저에게 회사는 전쟁터라기보다는 하나의 성 같습니다. 너무 견고해서 무너지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 멀리서 날아온 대포 하나에도 무너질 수 있는 성이요. 성 안의 사람들은 높은 성벽을 보며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습니다. 높은 성벽만 보면 성이 견고해 보여도 가까이 보면 벽에 균열이 가있기도 하고 이끼가 껴서 성 안에서 밖이 잘 안보이기도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작은 균열을 발견하고 보수를 하고, 이끼를 제거해서 밖을 잘 보고 싶어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한심합니다. 아직도 성벽은 높은데 누가 우리를 위협할 수 있겠냐고요.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성 밖은 다양하게 변화하지만 성 안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누가 왕을 세울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끼는 더욱 심해져서 창문을 가리고 작은 틈새였던 균열은 성벽의 큰 금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날아오는 대포 하나에 무너질 수 있는 성이 되어버리는 거죠. 성이 무너지면 성 안의 사람들도 결국 성과 함께 무너지게 됩니다.  


   


일 하는 사람     


“여긴 참 좋은 회사예요. 욕심만 없다면.”     


컨설팅을 위해 여러 회사를 방문합니다. 공통적인 특징은 회사에 문제가 많다고 인식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죠. 저는 거의 평가 보상 체계 개선과 관련된 컨설팅을 합니다. 평가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있을까요? 내가 하는 일에 비해 돈을 많이 번다고 느끼는 직장인은 과연 있을까요? 근속이 길어지면 급여도 오르고 승진도 되는 연공서열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 회사도 많습니다. 일부 기업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회사의 전반적인 특징 같아요. 오래 일했다고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야근을 많이 한다고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오래 일한 사람은 전문가가 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됩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회사와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은 근로자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근로자는 일하는 사람일까요? 


처음 인턴으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제 옆자리에 PC도 없이 신문만 보시던 분이 계셨어요. 전 인턴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이 징계를 받았고 인사팀 대기 상태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하루 종일 신문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 회사에서 제대로 된 일을 주지 않는다면 근로자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반면, 항상 낮에는 놀다가 오후 6시만 되면 일이 많다고 투정하는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7시에 회사 돈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고 8시에 돌아와서 1시간 정도 일하다가 차가 밀리지 않는 9시가 넘어서 퇴근합니다. 외근 후 회사로 돌아온 사장님은 늘 야근하는 그분을 보며 기특해합니다. 그분은 정말 일하는 사람일까요?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조직     


갑자기 왜 행복을 이야기하냐고요? 회사를 떠올려보면 왕을 누굴 세울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 성 안의 균열을 발견하고 고치려는 사람들, 이끼를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모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없어 하루 종일 신문을 봐야 했던 분도, 일이 없어도 눈치 보며 9시까지 퇴근을 못하던 분도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왕이 된 사람이 행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임금을 목적으로 일하는 근로자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일은 돈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하루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불행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직장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아서, 칼퇴할 수 있어서, 일에 대한 압박이 없어서, 내 돈 들이지 않고 밥을 먹어서 행복할 수도 있겠죠. 그뿐이라면 내 삶이 너무 초라하지 않나요? 그곳에서 느끼는 행복도 분명 가치가 있겠죠. 그러나 저는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조직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그 결과를 통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의미 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목적의식과 성취경험을 얻을 수 있다면 회사는 좀 더 다닐만하지 않을까요? 

어떤 것이 조직에 필요한 일일까요? 당연히 조직이라는 성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려고 애쓰는 일입니다. 아직도 회사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변화를 바라는 직장인들이 있음에도 그들의 노력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곳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난 여러 직장인들은 진심으로 조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조직의 문제를 어떻게든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그 조직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왜 노무사가 되고 싶었는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 개인적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1차적 목적은 달성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원하는 직업을 얻었다고 바라던 회사에 취업했다고 당장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겠죠. 어떤 노무사가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바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조직을 만드는데 기여'해야겠다고요. 제대로 된 일, 필요한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괴로운 조직생활을 이어가지 않도록 고민하며 실천하는 노무사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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