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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론토 케빈 Jan 08. 2024

여긴 캐나다, 나 스타벅스에서 일하고 싶어

서른을 훌쩍 넘어 한국을 떠났다.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은 한국에서 직항 비행기로 13시간이 걸리는 캐나다 동부지역의 토론토 인근이다. 영어는 내 인생에서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생각하던 내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지금, 스타벅스에서 파트너로 근무 중이다.


나는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전혀 없다. 해외 유학이나 교환학생,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던 유럽 배낭여행이나 워킹홀리데이조차 가본 적이 없다. 여권을 서른 살 즈음에 처음 만들었으니 이걸로 한 번에 설명이 될까. 그래서인지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함이 마음 한구석에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버킷리스트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 소중한 것처럼 망설이다 한국에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서른의 중반 어느 날, 더 이상 늦어지면 영영 안될 것 같아 눈 딱 감고 일을 저질렀다. 정말 무식하면 용감해 지나보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아서 더 겁이 없던 건지 그렇게 나는 캐나다에 오게 됐다.  


캐나다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스타벅스”였다. 왜냐고 물었을 땐 “제일 외국 느낌 나니까”라고 터무니없는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런 대책 없음 덕분에 스타벅스 파트너가 되고 싶던 나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참고로 나는 영어를 정말 못한다. 평생을 영포자로 살았다. 온갖 손짓 발짓으로 시작해 꽤 오랫동안 스타벅스 파트너로 살아가는 내가 나조차 신기하다.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캐나다에 온 이유와 맞닿은 부분이 존재한다. 내 무의식의 기저에 깔려있는 그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못한 것들에 대한 분출.

화려한 알바 경력을 자랑하는 나는 카페에서 일해본 적이 없다. 스무 살 무렵 지역에서 가장 번화가에 위치한 카페에 지원했었는데 용모단정을 이유로 거절당한 쓰디쓴 경험이 있다. 지금이야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그땐 그랬다. 그 이후로 카페 알바는 내 얼굴로 감히 넘보지 못할 그런 세계로 각인돼 버렸다.  

회사원 시절에는 사내 카페의 매니저님과 친하게 지낸 덕분에 가끔 에스프레소 머신 사용법을 배우고 틈틈이 카페 운영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 호기롭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겠다고 선언했다. 학원을 다녀보라는 권유에 혼자서도 충분하다며 손사래 쳤다. 그러다 실기장에서 손만 덜덜 떨다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그 이후 프로의 세계는 함부로 기웃거리면 안 된다고 다짐하고 한 발짝 더 물러나게 됐다.

마지막으로 퇴사 이후 프리랜서 활동을 계획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드디어 나에게도 카페에서 일할 기회가 찾아왔다. 집에서 꽤 먼 거리였지만 불만 없이 열심히 다녔다. 한 달이 갓 넘었을까 이제 막 적응을 하려던 찰나 경제적인 사정으로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해졌고 때 마침 좋은 조건을 제시한 회사의 오퍼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의도치 않은 빠른 이별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미련이 남았었나 보다. 캐나다에서 직업을 찾는 과정은 내가 그토록 바랐던 외국 살이와 카페 생활, 어쩌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나 혼자 좋아해서 계속 주변을 맴돌다 상처만 받고 돌아서는 것이 아닌 당당하게 세상 앞에 나설 수 있는 순간.

그런데 과연 그런 날이 올 것인가. 할 줄 아는 말이 헬로와 땡큐 말곤 없는데 과연 되겠는가. 이미 이곳에 온 것 자체가 큰 산을 넘은 것이라 그런지 그땐 별로 겁이 없었다. 이력서를 낸다고 무조건 뽑힐 것도 아닐 테고 어떻게든 되겠지란 심정으로 앞뒤 안 가리고 우선 지원부터 해보자고 생각했다. 


캐나다의 스타벅스도 한국처럼 온라인 시스템을 이용해 최초 지원을 해야 한다. 그 절차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홈페이지에서 개인 정보와 이력사항들을 입력하고 현재 채용을 원하는 매장을 조회해서 지원서 제출을 하면 된다. 집에서 반경 5km 안에 스타벅스 매장이 8개가 있었고 그중에 다섯 군데에 지원서를 넣었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이후 매장에 방문해서 지원했다고 밝히고 면접 볼 수 있는지 물으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글도 봤지만 우선 잠자코 기다렸다. 

이후 일은 내 영역이 아니니 그들에게 맡기자가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그렇게 시간은 점점 흘렀고 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지원서에도 내가 영어 못하는 게 보이나 보다.


기분전환이나 할 겸 주말을 맞아 가까운 곳으로 하이킹에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도 잘 안 터지는 숲에서 조용한 정적을 깨고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그 당시에는 캐나다에서 모르는 사람이 나를 찾을 일이 없던 지라 저장되지 않은 번호는 대개 무시했었다. 실은 어차피 받아도 못 알아들으니까. 그런데 왠지 이 전화는 꼭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날 찾는 걸지도. 그래서 조심스레 버튼을 눌렀다. 

헬로? / 안녕, 나 스타벅스 매니저야 혹시 다음 주에 인터뷰 가능하니? / 예쓰 예쓰! / 그럼 이메일 보내줄게 확인해 주렴 곧 보자 / 땡큐 땡큐!


전화를 끊었다. 역시 난 단답형 세 마디 밖에 하지 못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 이런 영어 수준으로 면접을 볼 수는 있을까? 괜히 가서 한마디도 못하고 오는 거 아닐까. BTS와 블랙핑크가 힘겹게 쌓아놓은 코리안의 이미지를 내가 다 망치면 어떡하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다. 하이킹이고 뭐고 빨리 돌아가자. 나 이제 면접 준비해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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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evin_dayby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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