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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를 되새기는 이유는 뭘까?

오늘의 실패가 당신을 속일지라도

by NORE

올해 12월은 기업의 프로젝트 입찰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느라 혼을 쏙 뺐다. 크리스마스니 연말이니 하면서 들뜬 마음으로 집을 단장하고, 파티 음식을 정하는 일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과업에 매몰되어 있었다. PT날짜가 다가 오자 시험에 쫓긴 수험생처럼 불안했고, 완벽한 준비가 될 때까지 책상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이 실로 괴롭다거나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이 들지는 않았다. 완벽에 대한 집착과 불안은 별개로, 일에 몰입될수록 오히려 희열 같은 게 느껴졌다. 오랜만이지만 낯설지 않은 경험이었다. 매달 마감이라는 무시무시한 줄타기를 하며 10년 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내가 그 과정을 어느 정도 즐겼다는 걸 인정한다.


잡지 업계에 있을 때, 선배들은 종종 ‘마감은 엉덩이가 다 한다’라고 말하곤 했다. 정신없이 원고를 쓰다 보면 정말이지 엉덩이가 납작 만두와 별반 다르지 않을 만큼 뭉개진 느낌이 든다. 손가락과 뇌를 빼고는 모든 신체 감각이 무던해질 정도로 몰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모니터 화면의 워드 페이지가 훅훅 넘어가 있다. 여전히 나에게는 글 쓰는 일만큼 몰입감을 끌어올리는 게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의 세계를 10년 넘게 유영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감사한 일이다.


회사가 싫어서 회사를 만든 지(https://brunch.co.kr/@editor999/61) ​오늘로 3년 차가 되어 간다. 오랜 시간 실무의 최전선에 있던 ‘나’에게 ‘대표’라는 직함을 더하는 게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다. 직함이 달라졌을 뿐 나는 여전히 나니까. 그런데 지진 보다 더 위험하다는 여진처럼 서서히 내 커리어의 균열이 일어났다. 회사를 운영하며 내 걱정거리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일‘ 그 자체가 아니었다. 프로젝트의 계약 전부터 성사까지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물론 여기서 성사가 되었더라도 끝이 아니지만), 어찌어찌 프로젝트가 성사되고 나면 제작 과정에서 예측불허한 상황을 뒷수습하기 바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결과물에 대한 막중한 책임이다.


나는 이제 정해진 일만 잘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야 하고, 일이 시작되면 중간에 멈춰 서지 않게 무조건 추진시켜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때때로 프로답지 못하는 말이나 행동들로 후회의 자국을 남기기도 했다. 때때로 다시 사회초년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자책감에 빠지기도 했다. 실제로 콘텐츠를 기획하는 기획자로, 글을 쓰는 에디터로는 꽤 경력을 쌓았을지 모르나 돈을 벌고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자로서는 아직 의욕만 앞선 주니어인 셈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대표가 유예 기간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너그러운 아량을 바랄 수도 없다. 사업은 우리의 밥그릇이 달린 현실이니까.


여전히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나에게 완연한 몰입감을 주지만, 회사 대표로 또 나 개인으로 ’일’을 만드는 ’일‘에는 예측불가한 변수가 많다. 다행인 것은 더 이상 나와 일을 동일시하며 자책하지 않는다. 후회로 물든 지난 실패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빠르게 헤쳐 나오는 방법을 고안해 낸다.

투자를 한 만큼 수익을 얻는 것은 진짜 성공이 아니다. 애초에 목표한 수익을 도달할 수 있을 만큼의 투자력과 추진력을 갖는 꾸준함과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 잠깐의 노력으로 일시적인 성과나 칭찬을 바라거나 단기적인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는 마음은 거둬야 한다는 것이다. 자책이나 후회의 시간을 앞으로 나아가는 개선의 기회로 뒤집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갉아먹는 독이 될 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지난 일들을 돌아보자면 한도 끝도 없이 자기 연민에 빠져드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비록 어제의 부족한 나였을지라도 오늘의 디딤돌로 만들어야만 한다. 영화 <메기>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구덩이를 더 파려 하지 말고, 얼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라고.‘ 수년 전 영화지만, 나는 지금도 실패의 순간마다 이 대사를 떠올린다.


군더더기 TMI,

안타깝게도, 연말에 공들여 준비한 경쟁 입찰에서 우리는 끝까지 논의에 거론될 정도로 아쉽게(클라이언트의 말에 의하면) 떨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나와 일을 동일시하며 자책에 빠져 허우적댔을 것이지만, 멘털에 굳은살이 박였는지 이번에는 조금 덤덤하게 지나갔다. 그저 주머니에 코인 하나만 꺼낸 것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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