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브랜드란 걸 거의 몰랐다.
그냥 엄마가 사다주는 시장 옷도 잘 입고 다녔다.
그런데 또래 친구들이 가슴팍에 새겨진 브랜드명을 언급하며 이 옷이 비싼 브랜드며 어디 옷이 멋지다며 품평하는 것을 알게됐다.
나는 단박에 초라함을 느꼈다.
수능이 끝나고 한 달간 아구찜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처음 한 일이 브랜드 옷을 사는 거였다.
"아버지는 베이비부머
태어날 때 가지고 온 달랑 두 쪽과
집 한 채 가진 하우스푸어고
아들은 전세값에 허리가 휘는
랜트푸어라고 한다
폼나는 직장이 좋아 각선미가 예쁜 커리어 딸은
가슴에 삼각별을 달아라
벤츠를 타고 출근하는 카푸어
어머니는 백화점 쿠폰북 받아보며
카드값 막기 위해
대출 상담을 하는 행복한 카드푸어가 된다"
이광희 시인의 '푸어족 전성시대'의 싯구 중 일부이다.
그야말로 많은 것이 풍요로운 시대가 됐다.
화려하고 비싼 것들을 소유하는 것이 풍요와 세련, 멋이란 이름으로 치장시킨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젊고 훤칠한 본부장과 이사들이 즐비하고 그들이 입고 타는 값비싼 옷과 장신구, 웅장한 외제차들은 대중에게 그것들이 당신의 품격을 높여줄거라 종용한다.
그러니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백만원을 호가하는 핸드폰은 구매해야하고, 할부금을 갚기 어려워 쩔쩔매면서도 명품백이나 외제차는 사야한다.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패트릭은 물질만능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그는 고급옷과 비싼 레스토랑에 다니지만 자신보다 멋진 명함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예약실패한 레스토랑에 다니는 폴에게 분노한다. 결국 폴을 도끼로 내려쳐 살해하고 만다. 물론 머릿속으로.
남들보다 좋은 차.
남들보다 좋은 집.
우리도 영화 속 패트릭과 다르지 않다.
요즘보면 소위 셋 중 하나는 외제차란 말이 나올 정도로 수많은 외제차가 도로를 달린다.
자국에서도 구매하기 어렵다는 명품백들이 품절대란을 겪는다. (심지어 현지보다 비싼 가격에 말이다)
내 친구의 동생은 첫 직장을 얻어서 다달이 모은 돈으로 외제차를 덜컥 샀다.
그리고 생활을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무엇으로 나를 증명하는가.
무엇이 나를 증명해주는가.
화려한 명품백이,
값비싼 외제차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고 믿는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었다.
한 달 월급보다 비싼 명품백을 사고 으쓱했고
비싼 시계를 들여다볼 때마다 남들 시선을 의식했다.
그런 것들이 나를 남에게 설명한다 믿었다.
내 가치를 높여준다 생각했다.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은 10개월짜리 할부대금 청구서와 알량한 자기만족 뿐 내 가치는 조금도 올라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나 스스로의 가치가 무엇인지 몰랐기에,
눈에 보이는 반짝이는 것들로 나를 설명하려 든 것 같다.
나는 더이상 명품백을 사지 않는다.
대신 내가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책을 사고 학용품을 산다. 백 대신 책을 사고 사은품으로 받은 에코백을 메고 다니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안하다.
(물론 명품관 앞을 지나칠 때 군침을 흘리는 건 여전하다^^)
물질적 풍요 속에 매몰된 빈곤한 마음이 넘쳐나는 오늘,
나 스스로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