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대인기피증이 있었다.
다른 방향에 사는 친구가 거의 매일 우리집 앞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자기집으로 갔다.
가끔 혼자 가는 날에는 또래 아이들과 마주치기 싫어서 일부러 멀리 돌아가기도 했다.
그 때 두 달만에 10킬로가 찐 후였다.
자신감이 없어진 게 대인기피증의 이유가 됐다.
그건 나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비출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내 자존감의 키는 무척이나 작았었다.
영화 '아이 필 프리티'는 자존감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통통한 몸매때문에 자존감이 낮던 '르네'는
머리를 부딪힌 후에 자신이 예뻐진 것으로 착각을 한다. 몸매도 얼굴도 그대로이지만 스스로 예뻐졌다고 생각한 것만으로도 그녀는 사랑과 직장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그건 다른 이와의 비교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판단이며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를 뜻한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매기는데 있어
내가 아닌 타인에게 잣대를 건네주고 만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나다..하하)
SNS지옥이란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보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SNS에는 온갖 멋진인생과 풍요로움, 화려한 라이프가 펼쳐지며 보는 이로 하여금 한없는 초라함을 준다.
(알고보면 그들도 그리 멋지고 즐겁게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보여주기 식으로 포장된 가상의 공간은
그야말로 자존감하락의 근원지 중 하나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문제는 화려한 SNS가 아니라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셈하는 가치산정방식이 아닌가 싶다.
(하하..이렇게 말하는 나도 SNS를 하지도 보지도 않는다. 아직은 비교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ㅋ)
예전에 책에서 이런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한 남자가 현자를 찾고 있는데 유명한 현자의 집에 갔더니 금은보화로 치장되어 있었다. 사치스런 현자에 실망하여 금욕을 실천 중인 다른 현자에게로 갔다. 그는 방에 세간조차 없이 지내고 있어 드디어 현자를 찾았다며 남자는 기뻐한다. 남자는 현자에게 이전에 방문한 사치스런 현자의 흉을 보는데 현자는 그가 집에 금은보화를 쌓아놓는 것은 그것들에 미혹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탄식한다.
진정한 자존감도 마찬가지다.
남이 어떻게 나를 판단하느냐의 외부적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얼마나 애정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렸으니까.
일을 하며 알게 된 강사 중에 가수를 겸업하는 남자가 있다. 말이 가수지 본인이 스스로 디지털 싱글 앨범을 낸 것 뿐이고 알아보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가수라고 말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 당당함이 그를 돋보이게 했고 학생들도 그의 음원을 찾아보며 무척 좋아했다.
나는 아직도 나를 작가라고 말하지 못한다.
내 자존감의 키는 조금 자라나긴 했지만
여전히 큰 나무로 성장하진 못했나보다.
하지만 조금씩 나 스스로가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황을 바꿀 수 없으면 생각을 바꿔라'는 말이 있다.
누구도 아닌 나는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 자체만으로 우린 충분히 사랑스럽고 고귀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