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로써

by 밑줄긋는여자

"ㅇㅇ이 엄마~"

딸아이의 예방접종을 위해 소아과를 방문했을 때 자연스럽게 내 이름 대신 누군가의 엄마라는 호칭이 따라붙었다.

처음 듣는 '엄마'라는 호칭이 조금 생소하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는 게 아닌가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앞으로 더 많이 내 이름보다는 내 딸아이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릴테니까.

영화'퍼즐'은 한 여자가 파티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식탁보를 깔고 파티용품을 달고 케익을 준비한다. 케익에 초까지 켜고 응접실에 도착하면 생일 축하노래를 사람들이 불러준다.

마치 다른 사람의 생일을 준비하는 것 같았지만 실은그녀 자신의 생일이었던 것이다. 그녀 자신의 생일에 생일 케이크까지 스스로 만들어야하는 모습은 왠지 슬프게 느껴졌다.


그녀는 두 아들의 엄마였고 아내였다.

가정에 충실하게 책임을 다하며 음식을 하고 남편이 좋아하는 치즈를 사다놓는다.

겉으로 보기에 안락하고 행복한 가정.

그러나 그녀자체는 그 가정안에 매몰된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역할을 맡게 된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으로,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빠로.


그리고 그 역할들에는 항상 책임이 따른다.

책임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 크기가 작던 크던 말이다.

영화에서 여자는 선물받은 직소퍼즐을 맞추면서 서서히 가정의 틀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퍼즐을 사기위해 처음으로 살던 마을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퍼즐파트너를 만나 대회준비를 하며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된다.


누구의 엄마와 아내가 아닌,

그녀 스스로의 존재로 자신에게 집중하기 시작한다.


희생과 책임은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엔 동감한다.

나 역시 그 희생을 먹고 자랐으니까.

그게 엄마든 아빠든 무엇이든

내가 선택한 역할에 대한 노력은 숭고하다.


다만,

그로 인해 스스로의 존재를 역할과 희생 안에 파묻어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매몰된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역할 속의 내가 아닌 나라는 존재자체와 대면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가장들이 은퇴를 하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내려놓았을 때 느끼는

고독감과 허무함에 불안을 느낀다.


자식들 뒷바라지와 집안일에 자신을 불태우던

많은 엄마들이

자식이 장성해 떠나간 빈둥지를 끌어안고

끝나버린 역할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것은

역할과 희생에만 자신을 온전히 내던졌기에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쓸 줄 모르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마타라고 부를 때 좋아요


영화 속 그녀는 엄마와 아내가 아닌 자신으로 불리길 원한다.


나 역시 누군가의 엄마가 된 것이 소중하지만 내 존재 역시도 소중하다.

역할의 책임과 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은 똑같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한 쪽에 치우쳐 자신을 돌아보지 않거나

자신만을 위해 역할을 내팽개치는 것은 무책임하다.


내가 아이를 한 손에 안아재우면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나 스스로를 마주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한 번이기에

내가 나일 수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그것이 직소퍼즐을 맞추는 시간이든,

한적한 낚시터에 앉아 있는 시간이든,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은

존재에 대한 예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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