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초중고 학생이 10명꼴로 자살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이 가정불화나 성적비관이 그 이유였다.
'에브리바디스 파인'이라는 영화는 가족모임에 자식들이 모두 참석하지 않자 아버지 프랭크가 자식들을 깜짝 방문하는 이야기이다.
뉴욕 화가, 오케스트라 지휘자, 광고회사 중역, 라스베가스 무용수.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는 자식들의 직업이다. 그러나 화가인 아들을 찾아갔지만 집을 떠나 방황했고 지휘자인줄 알았던 아들은 북을 치는 단원일 뿐이었다.
광고회사 중역인 딸은 남편과의 불화를 숨기고, 무용수 딸은 미혼모로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자식들은 사실을 숨기고 모든 것이 괜찮은 것처럼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기준에 기대에 맞는 자식일까?
후후...아마 아닐거다.
엄친딸과 엄친아는 부모님의 주변에 넘쳐난다.
변호사에다 배우자도 능력있고 집안까지 좋다더라.
7급 공무원인데 이번에 부모님 유럽 해외여행을 보내준다더라...
(쓰미마셍...와따시와 루,루저데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주변에 엄친딸 엄친아는 별로 없다.
내 친구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 소위 가방끈이 길지 않은 친구의 아버지는 자식들이 못다 이룬 배움의 한을 풀어주길 원해 엄격하게 다그쳤다. 남들도 아는 명성있는 대학에 가길 원했다. 그러나 내 친구는 지방의 이름모를 전문대를 나왔고 친구의 동생은 대학을 중도에 자퇴하고 말았다.
그 많던 '엄친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 주변엔 없고 부모님 주변에만 많은 이 불편한 진실.
내 인생 다 버리고 저 하나 잘되라고 죽어라 키워놔봤자 다 소용없데니께
영화 '레슬러'의 대사다. 어머니의 말에 아들은 대답한다.
"내가 엄마더러 언제 그렇게 살라 그랬어?"
부모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많은 것을 희생한다. 그렇기에 자식의 삶에 자신의 꿈이나 목표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게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안다. 당신들보다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은 부모님의 사랑인 것을.
하지만 자식의 미래가 안녕하길 바라는 부모의 욕심이 자식의 현재를 안녕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수능 수학영역을 가르치는 전문강사가 강남의 30억대 빌딩주가 되었다는 소식이 한 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수능점수를 비관해 자살시도를 한 뉴스도 같은 시기에 들려왔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고 싶은 자식은 없을거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역부족일 수도 있고 원치 않는 방향일 수도 있다.
자식의 행복을 바랬던 일이 자식을 절벽으로 내모는 경우도 많다.
유치원 때 받아쓰기 시험이 있었다.
한글단어를 듣고 쓰는 건데 10개 중에 5개를 틀렸다.
선생님은 시험지를 가지고 가서 부모님 서명을 받아오랬다. 집에 가는 길이 참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엄마에게 쭈뼛거리며 50점짜리 시험지를 내밀었다. 화장실에서 빨래를 하던 엄마는 화가 나서 서명을 못해주겠다고 하셨다.
"이거 싸인 안 받아가면 저 혼나요."
"가서 혼나!"
얼마나 속상하셨으면 그랬겠나.
하지만 어린 나 역시 상처를 받았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나 자신도,
'모자'라는 쉬운 단어조차 틀린 바보같은 실력도,
엄마의 차가운 시선까지... 참 슬펐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만큼.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나도 부모의 역할이란 것을 생각한다. 나는 내 아이에게 과도한 목표를 강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의 시험점수를 묻고 다그치기보다,
아이의 오늘 기분이 안녕한지 묻는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