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된다는 것

by 밑줄긋는여자

아이를 출산한 둘째날, 나는 병실에서 그야말로 펑펑울었다.

아이의 머리는 내 주먹보다도 작았고 목도 가누지 못하는 그야말로 여리디 여린 작은 생명이었다.

나는 손이 설어서 아이를 제대로 안지도 못했고 꼭 부숴질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이 작은 아이가 나를 믿고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졌다. 이 생명을 잘 지켜줄 수 있을까. 잘 길러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랬다.

나는 내게 닥친 책임감과 막막함 때문에 울었다.

영화 '체인질링'중에서
네가 태어난 날 소포가 하나 도착했거든.
책임이란 거야.


영화 '체인질링'에서 엄마 크리스틴이 월터에게 하는 대사다.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크리스틴은 갑자기 실종된 아들 월터를 평생을 걸고 찾아다닌다. 후에 아들이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린 걸 알게 되고 주변에서는 모두 죽었을거라 하지만 그녀만은 아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실화다.


부모가 되어보니 책임의 무게감이 어떤 것인지를 느낀다. 아이는 발가벗은 채 태어나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해야한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씻는 것도 그 어느 작은 하나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 생후 한동안은 손가락을 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신생아는 부모의 보살핌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하나의 생명이 오롯이 내 손 안에 있는 그 엄청난 책임감이 초보 엄마에게는 두려울 수 밖에 없었다.


남편과 나는 오글거리는 표현이지만 사랑의 결정체가 있어야한다는 데 동의했고 아이가 나올 날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기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아이가 우는 이유도 몰라 허둥대면서 힘들고 지쳤다. 이제 내 인생에서 평생을 자식이란 이름으로 내곁에 머물 아기에 대한 마음은 기쁨과 동시에 막막함이었다.


나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던 나도 이랬는데 준비없이 부모가 된 이들은 얼마나 막막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뉴스나 신문에 보도되는, 부모에게 방치된 아이들이나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아이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말할 수 없이 씁쓸한 마음이 든다. 고의든 아니었든 부모가 되었으면서 자신의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엄마나 아빠가 될 준비가 되지 못한 이들이 느꼈을 패닉에 가까운 두려움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우리나라는 성문화에 패쇄적인 부분이 많다. 성을 양지로 끌어내기보다 음지에 두는 경향이 강하다. 학교에서조차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중학생 때까지도 남녀가 한 방에 있기만해도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다. 성교육시간엔 남녀 생식기에 대한 명칭만 배웠지 어떻게 아이가 생기는 지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지금은 저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성에 대해 열린 교육을 가정과 사회에서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조차 제대로 지지 못한 이들이 아이를 갖게 되는 상황이 된다.


자신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이들이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책임지겠는가.


아이를 키우다보니

모성애나 부성애라는 것도

타고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이를 키워가며 함께 자라나는 걸 느꼈다.


그런데 부모가 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에게 아이에 대한 무한애정이 있을리 만무하다.


모든 것을 사회의 탓으로 돌릴 순 없다.

하지만 사회가 부모의 책임을 저버린 이들을 무작정 비난하기에 앞서 그런 이들이 준비없이 부모가 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교육과 보호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고사리 손으로 내 옷을 살포시 잡은 채 품 안에 안겨 자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이 작은 생명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애틋하게 느낀다.


새로 태어나는 모든 생명이 따듯한 책임으로 어루만져지길 바래본다.

keyword
이전 19화당신의 아이는 안녕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