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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밤 Jun 11. 2023

우연히 만난 진짜 떡

진짜 진짜 떡



즉흥적으로 한국 서쪽 바닷가 어느 마을에 짧은 여행을 왔다.

난생처음 와 본 장소, 이 바닷가 읍내는 내가 지금 한국 내에 있다는 안도감만 빼면 내겐 스웨덴 어느 바닷가 마을이나 마찬가지로 생소했다. 동서남북 나는 지금 어디인가 낯설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들어간 어느 떡집. 간판에는 방앗간이라고 쓰여 있었다. 떡집이란 말은 없었다. 

창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니 서너 가지 떡이 보였다. 무의식이 이끄는 것처럼 스르륵 들어가서 

3천 원을 주고 떡을 샀다.

이 떡을 구입한 나를 칭찬한다. 진심.

40년 전쯤 만들던 떡 맛이었다. 떡이 40살 먹었다는 뜻은 아니고. 뭐랄까 요즘떡이 아닌 맛. 

호화로운 백화점에 입점한 누구누구 떡이라든가 떡 연구가 아무개의 떡이라든가 전통음식 궁중음식 연구가 누군가의 떡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딱 40년 전엔 떡이 이랬지. 그런 맛이었다.


진짜 떡



국내에 살지 않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타향살이의 어려움' 중 상위권에 드는 어려움은 

당연 먹거리에 대한 것이다. 

나는 미국 내 여러 도시에서 살아보고 여러 도시로 여행을 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시판용 작은 고추장 한 통을 사기 위해 시속 100킬로로 2시간을 달려야 하는 동네에서도 살아봤고

간단히 김밥이나 한 줄 사다 먹을까? 생각이 났을 때 집에서 입고 있던 그대로 슬리퍼를 신고 지갑을 챙겨 

3분만 운전하면 되는 동네에서도 살아봤다.

물론 시속 100킬로로 4시간 5시간을 달려도 이런 것을 손에 넣지 못하는 곳에 사는 한인들이 미국 내에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이들도 '아마존 프라임회원'이라면 하루 이틀만 기다리면 청#원 순#고추장을 내 집 앞에 딱 갖다 주는 요즘이니 아주 예전에 비하면 큰 고통은 아닐 것이다.


콩으로 메주를 쒀서 간장을 빼고 된장 고추장을 담가 먹는 버팔로에 사는 한국인을 본 적이 있다.

고추를 길러 태양볕에 말려 빻아 고추로 '맨든' 귀한 고춧가루를 스스로 생산해 내는 한국인도 본 적 있다.

-------------------  아래부터는 내가 한 짓

콩을 갈아 비지를 만들고 두부를 만들고 콩나물을 기르고, 숙주나물을 기르고, 팥을 삶아 조려서 팥앙금을 만들어 단팥빵을 만들고 팥빙수를 만들고 상투과자를 만들고 호빵을 만들고 호떡을 만들고

떡볶이 떡을 손으로 밀어서 만들고, 나무로 된 혹은 도자기로 된 떡살을 찍어 절편도 만들고, 찹쌀떡도 만들고 백설기, 송편, 꿀떡도 만들어봤다.

참, 청국장까지 띄워 봤는데 차마 끓여보진 않았다. 아무래도 동네 주민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할 것 같았다.

'여기, 무언가 죽어서 썩고 있는 게 분명해요'라고.

그래서 청국장까지 가도록 두지 않고 낫또 상태가 되면 발효를 멈추고 그냥 낫또로 건강하게 먹는다.

그래, 나는 별별짓을 다 한다. 다 해봤다.

대충 흉내 내어 고향음식에 대한 갈증은 없앴다고 생각했다




서쪽 바닷가 어느 읍내 어느 방앗간에서 산 떡을 한 입 먹는 순간, 

몇 가지 기억이 떠오르고

1. 어릴 때 엄마를 따라서 동네 시장에 가면 한쪽으로 주르륵 줄을 지어 있던 떡집들에서 나오던 수증기

2. 진짜 쌀과 진짜 찹쌀로만 만들던 예전 떡 맛. 내 혀의 기억.


몇 가지 깨달음이 왔다

1. 신토불이- 한국에서 씨앗을 가지고 가서(그 옛날 문익점처럼) 우리 집 가든에 파종을 해서 키워봐도 같은 맛이 안나는 채소들에 대한 이해

2. 무림의 고수는 '무림'에 있기 때문에 '고수'라는 것.


바라건대 이런 진짜 떡을 내년에도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한참이 더 지난 뒤에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어디엔가 살아남아 계속 꼭꼭 만들어주기를. 

그리고 그런 떡을 내가 사 먹고 내 후손들이 꼭꼭 냠냠 먹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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