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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박가 Jul 10. 2024

아들이 뭐길래

쌍둥이가 태어나다

  어머니 뱃속 아기가 쌍둥이라고 했다. 우리 동네에는 쌍둥이가 하나도 없었는데 신기했다. 어머니 배는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다. 막달이 되자 남산만 해졌다. 오늘내일 출산 소식을 기다리다 학교에 다녀오니 어머니가 애를 낳으러 병원에 가고 없었다. 내가 아홉 살이던 유월의 어느 날이었다.


  다리에서 놀며 어머니의 출산 소식을 기다렸다. 지나가던 동네 어른들도 어머니 소식을 계속 물어보셨다. 한참 지났을 무렵 할머니가 '아들 낳았댜!'를 외치며 동네 한복판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할머니의 그렇게 기쁨에 넘친 환한 얼굴은 처음 보았다. 아들 낳겠다고 딸 다섯을 내리 낳았는데 드디어 우리 집에도 아들이 생겼다.


  오 형제 중 넷째인 아버지는 대를 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들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큰댁에는 다 아들이 있었다. 딸 없이 아들만 다섯이나 낳은 할머니는 언제나 기세등등하셨다. 그게 왜 그리 어깨에 힘줄 일인지 알 수 없었고, 할머니의 아들에 대한 집착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대단한 아들들의 이름을 심사숙고해 짓다 보니 두 번이나 바뀌었다. 우리 자매 이름은 당일날 지어 그날 서류에 올리기도 했다는데 아들이 귀하기는 한가 보았다. 할머니와 어른들의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이제 시작되려나 보았다.


  그런데 웬걸. 쌍둥이가 커가면서 집안 조용할 날이 없었다. 우리 자매가 소꿉놀이로 달그락달그락 놀던 집 곳곳에 쌍둥이가 지나간 흔적이 남기 시작했다. 멀쩡했던 방문 고리가 덜그럭거렸고 헛간에 있어야 할 삽이 마당 한가운데 박혀있기도 했다. 하나밖에 없는 자전거 바퀴가 펑크 나 있고 엉성해 보여도 쓸만했던 우산대가 없어지기도 했다. 수도꼭지 나사가 어디론가 도망가버렸고 성하던 밥그릇에 못이 박혀있었다. 아버지의 망치와 드라이버 같은 연장들은 집을 벗어나 황소둠벙 바위 위에 방치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없어진 연장을 찾으며 ‘선이 어딨어!’ 대신 하루에도 몇 번씩 '쌍둥이 어딨어!'를 외쳤다.

  아들 별거 없다는 걸 느낄 때쯤엔 할머니의 지극할 줄 알았던 아들 사랑도 행적이 묘연해졌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나름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아들딸 호칭은 차별을 두어야 했는지 여전히 우리 자매에게 '쓰잘데기 없는 가시나들'이라고 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의 마음이 어땠는지와 상관없이 하루라도 집안  조용할 날 없는 사건을 만들어주는데도 나는 쌍둥이 동생이 마냥 귀여웠다.


  형들처럼 칼싸움하며 놀아주지는 못했지만 업어주고 자전거를 태워주기도 했다. 쌍둥이가 좋아하는 달걀부침을 해주기 위해 사나운 닭들을 장대로 쫓아내며 금방 낳은 알을 사수해 오기도 했다. 쌍둥이가 누구한테 맞고 오기라도 면 동네를 주름잡고 있던 셋째 동생을 출동시켜 사과를 받아오게 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 대전으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을 때는 지하상가를 돌며 애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가 그려진 문구용품을 사러 다녔다.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을 모으고 모아 장난감을 사가기도 했다. 쌍둥이가 좋아할 걸 생각하면 내가 더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할머니의 아들 욕심으로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 오히려 우리에게 선물이었다. 할머니가 미우면서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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