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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May 16. 2021

회식을 금지한 사장

 “직원들끼리 불필요한 사적 모임을 만들지 말래요. ‘회식 금지령’이 떨어졌어요. 사장이 없으면 법인카드를 못 써요. 자기 빼고 회식하지 말라는 뜻이죠. 회사 뒷담화 방지가 아니에요. 정확하게 말하면 사장 뒷담화를 하지 말라는 거죠.”

 “해명이나 사과는 없네요. 직원들 입만 틀어막으면 끝이라 생각하나 봐요.”


 코로나 19로 회식자리가 사라졌다. 매달 억지로 끌려가듯 참석했지만 지금은 그때가 그립다. 하루빨리 술잔을 맞대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이런 슬픈 상황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T의 회사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5인 이상 집합 금지였다.


 “직원들 간 거리 두기를 시작한 건 사장이 모임을 다녀오고 나서부터 에요. 거래처 사장에게 ‘기업 리뷰 앱’ 이야기를 듣고 눈이 돌아갔거든요.


 “궁금하네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볼 수 있을까요?”

 해당 앱에서 T의 회사를 검색하면 별 점이 1.3점으로 나왔다. 워라밸이 2점을 조금 넘겼고 복지나 급여는 1점 후반이었다. 가장 낮은 점수는 경영진에 대한 평가로 1.2점이 매겨졌다. 리뷰는 더욱 심했다. 글만 읽어보면 이곳은 회사가 아니었다.


 “경영진 이야기가 많죠. 경영진이라 해봐야 사장뿐이에요.”


 “법인차로 과속 과태료, 장애인 구역 주차 남발에 벌금은 회사 경비로 처리한다고요? 게다가 거래처 갑질도 있네요.”


 신랄한 비판이 가득했다. 글을 본 사장은 허위사실이라며 게거품을 물었다. 회사 직원들 부인하는 사장이 허위사실을 말한다고 속삭였다. 팀장들을 불러 모아 머리를 맞댄 사장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며칠 뒤 ‘전 직원 필독’ 부분에 볼드가 들어간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회사에 대한 불건전한 루머와 근거 없는 비방을 방지하기 위해 ‘퇴근 후 법인 카드 사용을 막겠다’는 내용이었다.


 “직원들끼리 불필요한 사적 모임을 만들지 말래요. ‘회식 금지령’이 떨어졌어요. 사장이 없으면 법인카드를 못 써요. 자기 빼고 회식하지 말라는 뜻이죠. 회사 뒷담화 방지가 아니에요. 정확하게 말하면 사장 뒷담화를 하지 말라는 거죠.”


 “북쪽에 있는 백두혈통 지도자인가요? 무섭네요. 회사 벳지에 사장 얼굴이 있나요?”


 “리뷰 앱에 있는 말이 틀린 건 없어요. 하청업체 갑질로 사장이 신문에 났거든요.”

 본질을 잘 못 짚은 사장은 벌집을 잘 못 건드렸다. 직원들은 ‘직장인 커뮤니티 앱’으로 몰려가 더 직설적인 이야기를 했다. 게시판에 올라온 공지사항을 비아냥거리며 사장 행동을 꼬집었다.


 “커뮤니티 앱이 직원들 사이에서 핫 해졌어요. 사장을 독재자, 졸부라며 억눌렸던 분노를 쏟아냈죠. 익명의 여자 직원은 사장이 자신에게 드라이브를 하자며 문자 보낸 적 있고,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한다며 글을 올렸어요. 비슷한 일을 겪은 직원들이 댓글로 의견을 보탰고요.”


 “일이 커지네요. 점점 수습하기 어려워지는군요.”


 역시나 사장은 분노했다. 자신의 악행이 드러나서가 아니라 일개 직원 주제에 감히 사장을 욕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평소 회사에 불만을 표했던 몇몇 직원에게 가서 “커뮤니티 앱을 깔았냐”며 들쑤시고 다니기 바빴다. 사장 모습이 한심하고 부족해 보였다.


 “직원들 휴대폰을 뺏어서 검사하지 않았나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 같은데요.”


 “최소한의 양심은 있나 봐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다른 방식으로 처리했죠.”


 커뮤니티 앱에 가입하려면 메일 인증을 해야 한다. 일반 메일이 아닌 회사 메일만 가능했다. 사장은 이 점을 알고 전산부서 팀장을 불렀다. 사장의 긴급조치는 커뮤니티 앱에서 오는 인증 메일을 차단하라는 것이었다.

 “인증 메일을 막아버렸어요. 이제 가입할 방법이 없죠.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이 마지막이에요.”


 “해명이나 사과는 없네요. 직원들 입만 틀어막으면 끝이라 생각하나 봐요.”


 T와 나는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회식 금지령’이 선포됐지만 직원들은 사장 몰래 술잔을 기울였다. 직원들끼리 모여 회사 문을 나서려 하면 사장의 눈빛 공격이 쏟아졌다. 감시망을 피해 한 명씩 밖으로 나갔고 약속한 장소에 집결했다. 물론 법인카드는 쓸 수 없었다.

 “직원의 불만이 무엇인지 듣고 해결하면 될 일 아닌가요? 본인 행동이 상처를 줬다면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되죠.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


 나는 T의 회사생활을 듣던 중 답답한 마음에 탄식을 쏟아냈다. 내 말을 들은 T는 헛웃음을 보이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불만을 토해내는 직원 입을 막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사장은 다 계획이 있겠죠. 제가 사장직을 안 해봐서 모르겠네요. 하지만 정말 확실한 건 있어요.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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