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소장 May 09. 2021

최고의 스펙은 부모다

 “그 친구의 배경이 너무 부러웠어요. 저희 집은 일찍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셨거든요. 전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요. 나쁜 생각도 들었죠. '난 왜 그 사람처럼 좋은 집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라고요.”


 내가 아는 S는 어디서든 당당하다. 막힘없고 시원한 성격이라 대학 시절 조별과제를 하면 발표를 도맡아 했다. 나는 태생적으로 수줍음은 많고 낯가림이 기본값이다. S에게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거나 주눅 들지 않는 비결을 물어봤다.


 “사람들 앞에 나설 때 항상 최면을 걸어요. ‘난 저 사람보다 다. 너흰 다 내 밑이다. 너흰 다 내 밥이다’ 라고요.”


 자신의 성격을 파악한 S는 대학 시절부터 영업과 홍보 분야로 진로를 정했다. 반복되는 휴학과 길어지는 졸업 유예기간도 씩씩하게 이겨냈다. 드디어 그간 노력이 빛나는 순간을 맞이한다. 대기업 홍보 부서에 최종 면접만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역시 긴장하지 않았다.

 “<놀면 뭐하니> 김태호 PD가 그랬어요. ‘경쟁률이 높고 저보다 스펙이 더 좋은 사람이 있어도, 경쟁률은 내가 되느냐, 마느냐’ 라고요. 경쟁률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신경 안 쓰려고요. 10:1, 20:1로 생각하면 확률이 낮지만, 내가 합격하느냐, 불합격하느냐 라고 생각하면 50% 확률이거든요. 전 50%를 믿을 거예요.”


 당시 취준생이었던 나는 S의 대찬 에너지가 부러웠다. 진심을 담아 응원했고 합격하길 기도했다. 면접장을 찾은 S는 바짝 얼어있는 다른 지원자와 달리 준비된 음료를 마시며 마음의 여유를 가졌다. 면접을 앞두고 자신만의 최면을 걸었다. 잠시 후 그가 속한 그룹의 면접 순서가 다가왔다. 결전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면접장으로 비장하게 들어섰다.


 “홍보에 지원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 강한 인상을 주고 싶었어요. 친구와 인터넷 방송을 했었는데, 그때 소극장 연극 홍보 요청이 들어왔어요. 비록 돈은 못 받고 연극 티켓을 받았지만 남들과 다른 경험이잖아요? 방송 경험도 어필할 수 있고 광고나 홍보 직무와 연관 지을 수 있으니까요.”


 면접 질문은 어딜 가던 뻔하다. 왜 우리 회사에 지원하려고 하나요? 자신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S가 대비한 그 질문, 왜 해당 업무에 지원했나요? 뻔한 질문을 받은 그는 준비한 대로 시원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어진 지원자들의 대답은 S만큼 임팩트가 없었다.

 “한 명은 동아리 활동, 또 한 명은 전공이 홍보라서…. 대부분 이런 식이었어요. 대학생들이 해봐야 얼마나 독특한 일을 했겠어요? 그런데 그 지원자는 정말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어요. 면접관 눈빛이 바뀌더라고요.”  


 S와 같은 그룹에 속한 지원자가 한 말은 대단했다. 그 말을 들은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가 홍보 업무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원자는 면접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홍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이번에 시의원이 되신 큰아버지의 선거를 도우면서입니다.”


 짧고 굵은 대답은 면접관의 이목을 끌었다. 자세를 고쳐 잡은 면접관은 그 지원자에게 질문을 쏟았다. 일순간 S를 비롯한 다른 지원자들은 사라졌다. 질문도 눈에 띄게 많이 받았다. 그날을 회상하며 S가 덧붙였다.


 “제가 어디 가서 안 꿀리는 성격이에요. ‘쎄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게임이 안되더라고요. 큰아버지가 시의원이고, 선거 캠프에서 같이 일했던 홍보단장은 유명 홍보회사 출신이래요. 홍보회사 출신 단장한테 홍보 실무와 중요성을 배웠다고 했어요. 아무리 날고 기어도 타고난 수저는 못 이기는가 봐요.”


 안타깝게도 S는 최종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 일로 한동안 방황했다. 합격 발표 며칠 뒤, S는 SNS에 들어갔다. 선거 캠프 이력을 가진 지원자의 이름을 검색했다. 특이한 이름이라 쉽게 찾았다. 게다가 면접관들이 면접 내내 많이 불러대서 외워버렸다. 그 계정엔 회사 벳지를 달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댓글은 축하 메시지로 가득했다.

 “떨어진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 친구의 배경이 너무 부러웠어요. 저희 집은 일찍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셨거든요. 전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요. 나쁜 생각도 들었죠. '난 왜 그 사람처럼 좋은 집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라고요.


 취준생 시절 S에게 가장 힘들고 자존감이 무너졌던 시기였다. 평소와 다르게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힘내라’는 말이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옆에서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하지만 S는 시원한 성격답게 어려움을 시원하게 털어냈다. 아픔과 방황을 이겨낸 그는 현재 공기업에서 죽어라 야근을 하고 있다. 덕분에 공기업도 야근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제 성격은 어머니를 닮았어요. 악착같이 사셨거든요. 어디 가서 안 꿀리려고 하셨어요. 제가 드세고 시원시원한 것도 어머니 영향인가 봐요. 아픔을 털어내고 다음을 준비할 수 있었죠.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해요. 아,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 지원자가 아니었더라도 전 떨어졌을 거예요. 준비가 많이 미흡했어요.”


 S그날의 원망을 떠올리며 머쓱하게 웃었다. 참회의 뜻으로 어머니께 용돈을 많이 드린다고 했다.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쯤 느낀 점이 있다며 말을 덧붙였다.


 “최종 면접에서 만났던 그분이 많은 질문을 받은 것과 제가 어려움을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부모님 덕분이에요. 최고의 스펙은 부모인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도 건강하고 당당한 에너지는 여전했다. 힘의 원천은 그의 어머니였다. 낙방의 화살도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아닌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렸다. 못 본 사이 그는 재력과 겸손함까지 갖췄다. 힘든 순간을 극복하고 이제는 웃으며 말는 모습을 보며 또 한 번 S의 성격이 부러웠다.

이전 17화 경조사 강제 참석하는 회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