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소장 May 04. 2021

경조사 강제 참석하는 회사

 “신랑에게 얼굴 도장을 찍는 게 아니라 사장에게 찍어요. 장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참석하지 않으면 귀신같이 기억해요. 월요일에 마주치면 “바쁜 일 있었냐”며 대놓고 눈치를 줘요.”

 “축하 자리에 가는 건 좋은 일이죠. 하지만 매번 지출하는 경조사비도 많이 부담돼요. 주말에 시간 내서 자리 채우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죠.”


 결혼식에 늦게 온 사람이 먼저 도착한 직장 동료에게 물었다.


 “신부가 우리 회사 사람이죠?”


 “아뇨, 신랑이요.”


 R이 다니는 회사의 에피소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회사에선 흔한 일이라 했다.


 “이게 다 우리 회사 ‘문화’ 때문이죠. 문화라 하기도 창피하네요.”


 R은 지난달 경조사 지출로 50만 원을 썼다. 결혼식, 돌잔치, 장례식 등 회사 사람들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 동료의 경조사에 얼굴을 비춰야 하는 문화가 회사에 존재했다.

 “5월이나 7월은 정말 힘들어요. 결혼식이 너무 많아요. 좋은 일이긴 한데, 재정 부담이 너무 크잖아요. 거기다 주말에 시간을 내야 하죠. 따지고 보면 주 6일제를 하는 거예요.”


 “친하지 않으면 굳이 참석할 필요 있나요? 솔직히 회사 그만두면 안 볼 사람들이잖아요.”


 나의 단호한 말을 들은 R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도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경조사 참석 문화에 앞장선 사람은 다름 아닌 ‘대표’였다. 그는 ‘직원의 가족이 모이는 곳에 참석해야 직원도 가족이 된다’는 마인드를 가진 경영자다. 혼자만 가면 될 것을 전 직원을 대동하여 결혼식 단체 사진에 얼굴을 박았다.


 “요즘도 그런 곳이 있나요? 아니, 그런 사람이 있어요?”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답니다. 신랑, 신부에게 얼굴 도장을 찍는 게 아니라 사장에게 찍어요. 장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참석하지 않으면 귀신같이 기억해요. 월요일에 마주치면 “바쁜 일 있었냐”며 대놓고 눈치를 줘요.”


 소름 돋는 대표의 기억력에 말문이 막혔다. 직원들의 축하보다는 직원들의 참석에 신경 쓰고 있었다. 결국 한 직원이 대표에게 간언을 올렸다. 친분 없는 직원 경조사까지 챙기는 건 서로 불편한 일이라며 참석을 자율에 맡기자고 했다. 대표는 코웃음 치며 받아쳤다.

 “친한 사람이면 더욱 참석해야 하고 안 친한 사람이면 경조사를 계기로 친해질 수 있죠. 그리고 직원이 남인가요? 치열한 회사에서 버텨내려면 직장 동료가 아닌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직원들은 대표를 향한 기대를 내려놨다. 같이 업무 적 없고, 전화 한 통 해본 적 없는 직원 경조사에 갈 때면 기분이 이상했다. 맞이하는 사람도 참석한 사람도 뻘쭘하기 그지없었다.


 “축하 자리에 가는 건 좋은 일이죠. 하지만 매번 지출하는 경조사비도 많이 부담돼요. 주말에 시간 내서 자리 채우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죠.”


 주말을 맞이한 R은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12시와 1시 총 두 번이었다. 총 10만 원을 축의금으로 냈다. 대표에게 얼굴 도장 찍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 점심 식사를 한 그는 저녁엔 직장 동료 자녀의 돌잔치에 갔다. 회사 사람들 결혼식 복장 그대로 참석했다. 역시나 대표에게 먼저 얼굴을 비추고 동료와 돌잔치 주인공인 아기를 찾았다. R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동료 손에 5만 원이 든 봉투를 쥐어주고 자리를 벗어났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경조사가 몰렸어요. 그 달 경조사비로 50만 원이 나갔답니다. 아직도 회복이 안 돼요. 큰돈이 한 번에 나갔잖아요. 사실 안 나가도 되는 돈인걸요.”


 직원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대표는 모든 경조사에 직원을 참석시켰다. 경조사비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회사에서 지원하는 방법은 생각지도 않았다. 하긴 알았다면 주말에 직원들을 강제로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봉투에 돈을 담아 축의금을 전달할 때, R은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내 결혼식에 참석할까? 나보다 적은 돈을 봉투에 넣는 건 아닐까?’


 나도 R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근속기간이 짧은 회사라면 축의금 ‘먹튀’가 일어난다.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경조사에 참석하거나 돈 봉투를 보낼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같은 부서나 친한 사이였다면 기대해 볼만 하다. 타 부서나 일면식 없는 사람이라면 경조사 소식을 전달하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회사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해요. 제가 퇴사하거나 그 사람이 그만두면 내 경조사에 온다는 보장도 없죠. 회사 밖에선 보지 않을 사람에게 시간과 돈, 마음까지 쓰고 있어요. ‘안 가고 안 받는 문화’가 안 된다면, 갈 사람만 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서로서로 부담이네요. 시간과 돈이 많이 들잖아요.”


 타 부서 사람이 뜬금없이 찾아왔다. 친근하게 나의 이름을 부른 그는 종이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다. 청첩장이었다. 타 부서일 뿐 아니라 본부도 달라서 거의 못 본 직원이었다. 청첩장을 받은 나는 축하 인사를 했다.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됐다. 때 청첩장에 적힌 내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철자가 틀려있었다.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사이였다. 토요일에 할 일이 생각났다. 5만 원이 굳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