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소장 May 23. 2021

다른 부서 화장실을 쓰는 이유

 “회사 사람들이 같이 쓰는 화장실이잖아요. 과장은 변기 커버도 안 올리고 소변을 봤어요. 아무리 조준을 잘해도 커버에 튀거나 묻잖아요. 다른 사람이 쓴다는 생각은 안 하나 봐요. 아니면 생각 자체가 없거나요. 소리만 들었는데 소변이 변기 커버로 향하는 게 반 이상이었어요. 본의 아니게 과장의 전립선 성능도 알게 되었답니다.”

 “그걸 본 뒤로 큰일은 다른 층 화장실로 가서 해결해요. 다른 부서 사람이나 다른 회사 사람들을 마주칠 때도 있어요. 다들 절 이상하게 쳐다봐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급하니까요.”


 평소보다 노래를 크게 틀었다. U가 사무실에서 노래 듣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다. 노래로 덮고 싶은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리가 너무 크다는 상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쉬운 대로 스피커 방향만 자신 쪽으로 돌리는 것에 만족했다.


 “볼륨을 키운 이유가 있나요? 즐겨 듣는 노래가 나와서 그런가요?”


 나의 질문에 U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앞자리에 앉은 과장님 때문이에요. 건너편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거든요.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요.”


 “어떤 소리길래 노래 볼륨까지 키우게 만드나요? 궁금하네요.”


 U가 말한 이유는 경악스러웠다. 과장이 사무실에서 ‘트림’을 했다. 아침엔 빈 속이라 개운치 못하다며 ‘구룩’, 점심엔 방금 먹은 음식이 소화가 안 된다며 ‘꺼억’, 저녁엔 배가 고프다며 ‘꾸엑’ 거렸다. 입사 초기에 이 모습을 본 U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휴대폰 진동이 온 줄 알고 착각할 지경이었다.


 “사람들 다 있는 곳에서 트림을 해요. 미치겠어요. 위장이 어떻게 된 건지 소리도 다양하게 내요. 제가 비위가 센 편인데 이건 정말 못 참겠어요.”


 “볼륨을 키울 만하네요. 저였으면 무선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을 거예요. 아니면 과장의 입을 틀어막던가요.”


 “말하는 지금도 귀에 그 소리가 맴도네요. 더 충격적인 것 도 있어요.”


 U는 과장과 화장실에서 마주쳤다. 소변기에 사람이 꽉 차 있어 거울을 보며 순서를 기다렸다. 과장은 급했는지 대변기로 달려갔다. 그의 뒷모습을 본 U는 경악했다. 변기 커버도 올리지 않고 소변을 보고 있었다.

 “회사 사람들이 같이 쓰는 화장실이잖아요. 과장은 변기 커버도 안 올리고 소변을 봤어요. 아무리 조준을 잘해도 커버에 튀거나 묻잖아요. 다른 사람이 쓴다는 생각은 안 하나 봐요. 아니면 생각 자체가 없거나요. 소리만 들었는데 소변이 변기 커버로 향하는 게 반 이상이었어요. 본의 아니게 과장의 전립선 성능도 알게 되었답니다.”


 “아, 최악의 매너네요. 집에서도 그러겠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볼일을 끝낸 과장은 세면대 앞에 섰다. 옷매무새를 고친 그는 소변보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오른손 엄지와 검지만 물로 헹구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걸 본 뒤로 큰일은 다른 층 화장실로 가서 해결해요. 다른 부서 사람이나 다른 회사 사람들을 마주칠 때도 있어요. 다들 절 이상하게 쳐다봐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급하니까요.”


 과장의 더티 플레이는 점심시간에도 이어졌다. 탕이나 찌개는 그의 점심 단골 메뉴였다. 음식을 덜어먹는 앞 접시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국자로 먹을 만큼 퍼 갔지만, 과장은 자신의 숟가락을 냄비에 쑤셔 넣었다. 냄비가 자신의 앞 접시였다. U가 가장 좋아하는 점심 메뉴는 ‘부대찌개’ 다. 과장과 부대찌개를 먹는 날엔 최대한 많은 양을 앞 접시에 담았다.

 “기회는 한 번 뿐이에요. 햄, 소시지, 국물을 자그마한 앞 접시에 듬뿍 담아야 해요. 밥 먹다가 부족하면 찌개를 더 먹을 순 있겠죠. 그런데요. 밥풀이 가득한 과장의 숟가락이 스팸을 찾는다고 찌개를 뒤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다시 먹기 싫어져요. 반찬으로 남은 밥을 해결하고 말죠. 제가 너무 까탈스럽게 보이나요?”


 “아니요.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라면 전 그 과장과 겸상도 못 할 것 같아요. 속이 울렁거리네요.”


 회식 때는 다들 과장과 같이 앉는 걸 꺼려했다. 최대한 먼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직원끼리 눈치 싸움을 했지만, 입사 연차가 낮은 U는 어쩔 수 없이 과장이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기분이 좋아진 과장은 U에게 “일을 열심히 한다”며 칭찬을 했다. 어깨를 토닥거리던 과장은 “앞으로도 잘해보자”며 술잔을 내밀었다. U가 그 잔에 술을 채우려 하자 과장은 ‘껄’ 웃으며 잔을 U의 손에 쥐어줬다.


 “마시던 술잔을 저에게 줬어요. 이게 과장의 주사 ‘잔 돌리기’에요. 다른 테이블에 가려고 애썼던 이유가 바로 이거죠. 휴지닦아 내서 내밀었지만 고춧가루가 붙어있었어요. 마셔야 할 분위기라 마셨는데, 제 인생 중 가장 독한 술이었답니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 지금처럼 잘 피해 다니면 되겠죠?”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U에게 위로를 건넸다. 그날의 술잔이 생각난 U는 물티슈로 입술을 닦아댔다. 누군가 '사회생활은 더럽다'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전날 술을 마신 나는 하루 종일 속이 좋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배에서 아주 큰 신호가 왔다. 울부짖는 배를 끌어안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무사히 도착한 나는 벨트를 풀어헤치고 변기에 엉덩이를 들이대려 했다. 그때 U와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다. 급한 상황임에도 변기 커버를 살폈다. 샛노란 자국이 있었다. 큰 일을 앞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도 다른 부서 화장실을 써야 하는 걸까?'

이전 19화 회식을 금지한 사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