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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Jun 13. 2021

휴가 때 걸려온 팀장의 전화

 “최종 결재한 사람이 팀장이에요. 저에게 온갖 질문을 다 해놓고는 보고서 내용을 모른대요. 그럼 도장은 왜 찍은걸 까요. 웃기지 않나요? 데이터 작업을 같이 한 과장도 회사에 있어요. 휴가 중인 저한테 전화를 했네요.”

 “저의 직급은 과장도, 대리도 아닌 1년 차 사원이에요. 신입이 하는 업무죠. 그걸 윗사람들이 처리 못해서 난리가 난다고요? 그런 회사는 없어져야죠.”


 어머니가 울었다. 힘들다고 했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 몰랐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드시고 싶어 했던 음식을 앞에 두고 자식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사건의 발단은 ‘팀장 전화’였다. W는 가족과 떠난 휴가에서도 팀장의 괴롭힘을 받았다.


 “운전 중이었는데 팀장 전화가 왔어요. 너무 놀라 블루투스 연결 중인 것도 잊은 채 전화를 받았죠. 팀장의 화난 목소리가 차 안 가득 울려 퍼졌어요.”


 W의 휴가 이야기를 듣던 중 조심스레 물었다.


 “업무 마무리를 안 하고 갔나요? 휴가 중인데 팀장이 전화를 한 걸 보면 큰일인가 보네요.”


 질문을 들은 W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삼일 휴가를 쓰려고 이주 동안 야근했어요. 주말 출근도 한 번 했네요. 업무 펑크 낸 것도 아니에요. 휴가 복귀 후 해도 될 일미리 했답니다. 팀장이 전화 한 이유는 예전에 끝냈던 대외 보고서 때문이에요.”


 W가 휴가를 며칠 앞둔 날이었다. 깐깐한 팀장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몇 번이나 고쳤다. 과장의 지시 아래 데이터 가공을 수도 없이 했다. ‘휴가를 취소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긴박하게 업무를 쳐냈다.


 “너무 힘들었죠. 휴가가 아니었으면 못 버텼을 거예요. 결국 최종 결재를 받았죠. 마음 편히 휴가를 갈 수 있어 기뻤어요. 그땐 몰랐죠. 휴가 때 전화가 올 줄은요.”


 W의 휴가 준비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 삼 일을 쉬기 위해 이주를 헌신해야 했다. 가족과 떠난 행복한 휴가는 팀장 전화에 모든 것이 부서졌다.


 “보고서 내용을 트집 잡았어요. 외부에서 해당 내용이 잘 못 됐다고 했죠. 최종 결재한 사람이 팀장이에요. 저에게 온갖 질문을 다 해놓고는 보고서 내용을 모른대요. 그럼 도장은 왜 찍은걸 까요. 웃기지 않나요? 데이터 작업을 같이 한 과장도 회사에 있어요. 휴가 중인 저한테 전화를 했네요.”


 쉬지 않고 쏟아지는 W의 사연을 들으니 씁쓸했다. 내용도 모른 채 결재를 하고 문제가 생기면 부하 직원에게 화내는 상사는 모든 곳에 있었다. 그는 잠깐의 침묵 후 다시 덧붙였다.

 “저의 직급은 과장도, 대리도 아닌 1년 차 사원이에요. 신입이 하는 업무죠. 그걸 윗사람들이 처리 못해서 난리가 난다고요? 그런 회사는 없어져야죠.”


 W의 말을 들으니 마음속에서 무언가 솟구쳐 올랐다. 팀장 행동에 화가 나서 나도 덧붙였다.


 “그만큼 그 사람들이 일을 안 한다는 방증 아닐까요? 시키기만 하고요. 게다가 물어본 내용은 결재받을 때 몇 번이나 설명했잖아요. 휴가 중인데 어쩌란 건가요.”


 팀장도 알고 있었다. 전화해서 달라질 건 없다. W가 당장 피시방으로 달려가지도 못한다. W는 팀장의 평소 행동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전화 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출근 전, 퇴근 후 전화하는 거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에요. 출근하려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팀장 전화가 온 적 있어요. 20분 뒤면 회사에 도착하거든요. 팀장은 그걸 못 참고 전화를 했더군요. 퇴근 때도 마찬가지예요. 업무시간에 지시하던가 아니면 다음날 출근해서 해도 될 내용이었죠.”


 “아, 이런 거 네요. ‘난 회사에 있는데 넌 밖에 있어?” 눈치 주는 거군요.”

 나의 추측이 맞았다. 장기간 회사를 비우는 W가 마땅찮았던 팀장은 보고서 내용을 이유로 전화를 걸었다. 부하 직원이 어떤 상황에서 전화받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에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이 아니라 ‘부품’ 취급하는 거예요. 아랫사람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관리자로 있으니 이런 비인간적인 상황이 생기는 거죠. 간장 종지엔 라면도 못 끓여요. 마음이 종지만 한 사람이에요.”


 취업 후 처음으로 떠난 가족여행이었다. 팀장 훼방에 분위기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족들 중 가장 마음 아파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기분 좋은 날 눈물을 보인 W의 어머니가 걱정되었다. 그날 일을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아랫입술을 한참 깨물고 있던 W는 불편한 기억을 술회했다.


 “팀장의 첫마디는 “쉬는 날 미안하다” 였어요. 목소리에선 전혀 미안함을 찾아볼 수 없었죠. 통화가 끝나고 나서는 오히려 제가 미안한 사람이 됐어요.”

 

 젠틀하게 시작한 팀장은 이후 온갖 비속어를 섞어가며 화를 냈다. 가족과 함께 있다고 말하려 했지만 W는 너무 당황하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바탕 쏟아낸 팀장은 휴가 중인 그에게 내용을 확인하라며 전화를 야멸차게 끊었다.

 “저보다 어머니가 많이 놀라셨죠. 저야 맨날 듣는 잔소리인데요. 아들이 혼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쓰러웠나 봐요. 차에서 한참을 말없이 계셨어요. 귀한 자식이 다른 사람한테 '이 놈, 저놈' 소리를 들으며 쩔쩔매니까 마음이 불편하죠.”


 W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휴가 중 팀장이 전화한 상황나를 대입했다. 가족이 팀장 때문에 힘들어하면 기분이 어떨까? 나였다면 당장 회사로 달려가 팀장 멱살을 잡았을 것 같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상상을 잠깐 하고 W의 마지막 말을 들었다.


 “시무룩한 어머니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팀장에게 문자 보내려고요. 마침 '팀장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어요. 가족 여행 가서 딸과 찍은 사진이었죠. 부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어요. 우리 엄마는 울었는데 말이죠.”


 남의 자식 쥐어짜서 자기 자식 먹여 살리는 추악한 모습이었다. 나의 팀장은 아니지만 핍진하게 설명해준 W 덕분에 팀장 밑에서 일하는 것 같았다. 대화를 마치며 W와 나는 '절대' 팀장처럼 하지 않도록 다짐하고 반추하며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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