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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Jun 01. 2021

예스맨 상사가 너무 싫어요

 “대표에게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안 될 걸 알면서도 '네'라고 답했죠. 대표 지시사항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수하는 게 이사 고집이에요.”

 “자신이 대표에게 '예스맨'인 것처럼 직원들도 자신에게 '예스맨'이 되길 강요했어요. 업무 조율과 의견을 내는 건 실무자로서 당연한 일 아닌가요? 이사는 그걸 인정하지 않았어요. 오직 대표가 내린 업무를 달성하는 것만 중요했죠.”


 안 된다고 말하길 바랬다. 역시나 상사의 입에선 "네"라는 대답이 나왔다. 터무니없는 지시였다.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떠안은 V는 상사를 원망했다.

 

 “기억에 남는 상사가 있나요?”

 

 질문을 받은 V는 대표에게 항상 '네'라고 답한 이사를 꼽았다.

 

 “별명이 '네네치킨'이었죠. 대표의 지시에 무조건 '네'라고 해서 붙여졌어요.”

 

 대표가 이사에게 프로젝트를 지시하면, 업무는 이사를 통해 V가 속한 팀으로 하달됐다. 이사는 절대 'NO'라고 말하지 않았다. 덕분에 대표의 절대적인 충신이 되었고 입사동기들을 제치고 이사로 올라설 수 있었다. 

 “네네치킨 이사 때문에 실무자들만 죽어났죠. 누가 봐도 안 되는 업무였어요. 대표에게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안 될 걸 알면서도 '네'라고 답했죠. 대표 지시사항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수하는 게 이사 고집이에요.”

 

 “업무 방향에 대해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겠죠? 세부적인 내용이라던가 업무 분장 같은 건 확실하게 해 줬나요?”

 

 V는 도리질 쳤다. 이사는 대표에게 받은 터무니없는 업무를 그대로 던지기만 했다. 본인 생각이나 실무자에게 주는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실무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아니할 줄 몰랐다.

 

 “주로 메신저로 업무를 받거든요. 이상하게 일을 시킬 땐 이사의 메신저 말투가 평소와 달라져요. 존댓말로 바뀌고 문장 끝 부분에 '...'을 넣어요. 원래는 안 그래요. 그 이유를 선배가 설명해줬어요.”

 

 이사의 업무는 손가락 두 개만 있으면 충분했다. 대표가 메신저로 이사에게 업무 지시를 내린다. 이사는 최대한 빠르게 "네"라고 대답하고 대표의 채팅을 그대로 '복사'한다. 그런 다음 이사와 실무진이 있는 채팅방으로 가서 '붙여 넣기' 하면 역할은 끝이다.

 “평소 말투와 달라지는 이유는 대표의 지시내용을 그대로 복사(Ctrl+C), 붙여 넣기(Ctrl+V)해서죠. 업무방법을 알려주거나 방향성 따윈 말해주지 않아요. 실무자들은 맨땅에 헤딩하며 숙제를 풀어야 해요.”


 실무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이없는 업무지시와 달성하기 힘든 프로젝트에 버거움을 표했다. 이사는 직원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실무자 한 명이 이사 지시에 'NO'라고 말했다. 거세게 반대하는 실무자를 밖으로 불러낸 이사는 침을 튀기며 소리를 질렀다.


 “근무태만과 업무 불성실 사유로 징계하겠다고 했죠. 자신이 대표에게 '예스맨'인 것처럼 직원들도 자신에게 '예스맨'이 되길 강요했어요. 업무 조율과 의견을 내는 건 실무자로서 당연한 일 아닌가요? 이사는 그걸 인정하지 않았어요. 오직 대표가 내린 업무를 달성하는 것만 중요했죠.”

 이사의 쪼임에 고통받던 실무자들은 하나 둘 회사를 떠났다. 이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하 직원이 작성한 보고서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서 대표에게 올렸다. 대표 반응이 좋으면 본인 덕이고 쓴소리가 나오면 실무자 탓 했다.


 “보고서 피드백도 자신의 생각이 없었죠. '네'라고 한 뒤 대표의 메시지를 복사하여 붙여 넣거나, 대표의 지적을 그대로 전달만 했어요. 마음 같아선 대표실로 들어가 직접 보고하고 싶었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높은 자리에 올라갔네요. '복붙'업무가 중요한가 봐요? 이사까지 올라간 걸 보면요.


 “대표의 '예스맨'답게 많은 업무를 받아서 뿌려놨죠. 주요 프로젝트에 발을 살짝 담가요. 일이 잘 되면 자신의 성과로 치장했고요. 안 되면 부하 직원의 역량 부족을 탓하며 슬그머니 발을 빼죠. 정말 약삭빠른 사람이에요.”


 V도 이사에게 프로젝트 성과를 매번 갈취당했다. 대표 지시에 '네'라고 답하고 전달만 했던 이사는 손대지 않고 코를 풀었다. '이 사람 밑에선 더 이상 발전이 없다'라고 생각한 V는 사직서를 던지고 회사를 떠났다. 마지막 인사로 이사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마무리했다.

 “정말 슬픈 건 옮긴 회사에서도 '네네치킨'이사 같은 사람이 있어요. 어느 회사든 '예스맨' 상사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나 봐요. 이제 깨달았어요. 사회생활은 이런 거고, 어딜 가든 다 똑같다는 걸요. 살아남으려면 저렇게 살아야 하나 봐요.”


 높이 올라가고 싶다면, 오래가고 싶다면 '예스맨'이 되어야 하는 것이 모든 회사의 이치인가 보다. 오늘 회사에서 팀장 지시에 토를 달았다. 나는 끝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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