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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Jul 11. 2021

직장 내 성희롱을 목격했습니다

 “직장 상사 집에서 술 마시다 다치면 ‘산재’ 처리가 된다는 거 알아?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너 오늘 우리 집에 갈래? 오늘 나한테 잘 보이면 팀장한테 잘 말해줄게. 자, 한잔해”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안 난대요. 책임을 회피하는 만능 ‘치트키죠’. 피해자가 본인 딸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우리’ 이야기였다. 뉴스, 영화에서만 보던 ‘직장 내 성희롱’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남’의 이야기로 생각했던 일을 맞닥뜨린 Y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아무 말도,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했다. 못 본 척, 모른 채 하며 기억을 덮어버렸다. 우리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낸 날은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였다.


 “오랜만에 동기들과 술자리를 했어요. 총 네 명이고요. 그중 한 명이 여자 동기예요.”


 “아, 그 여자 동기가 혹시, 안 좋은 일을 겪은 분인가요?”


 Y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술집 입구에서 큰 소리가 났다. 그곳엔 타 부서 팀장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Y와 여자 동기가 앉은 테이블을 본 팀장은 그곳으로 성큼 걸어왔다.

 “저희에게 오더니 다짜고짜 여자 동기 가방을 뺐었어요. 동기가 너무 놀라 소리를 ‘악’ 질렀죠. 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을 들고 구석자리로 갔어요. 계산은 자기가 할 테니 테이블을 합치자 했죠.”


 팀장은 가방을 자신의 옆자리에 놨다. 그러곤 동기에게 ‘자신 옆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때 마침 옆 테이블에서 조용히 좀 해달라는 불평이 들어왔다. 이 틈에 가방을 되찾은 동기는 팀장 옆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Y는 팀장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고, 동기는 Y의 옆에 앉았다. 수작에 실패한 팀장은 먹고 싶은 걸 다 사주겠다며 동기에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동기가 메뉴를 고르고 있었죠. 그 모습을 바라보는 팀장 눈빛이 이상했어요. 동기의 손과 어깨를 훑어보며 히죽거렸죠. 결국 팀장은 동기에게 큰 실수를 했어요.”


 음료를 한 모금 마신 Y는 팀장이 동기에게 내뱉은 말을 그대로 옮겼다.


 “직장 상사 집에서 술 마시다 다치면 ‘산재’ 처리가 된다는 거 알아?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너 오늘 우리 집에 갈래?”

 팀장은 박장대소하며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Y는 동기의 표정을 살폈다. 마치 경련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졌다.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건 Y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팀장은 동기에게 잔을 채워 달라며 술잔을 내밀었다. 소주병을 잡은 동기는 손을 떨며 팀장의 잔을 채웠다. 동기의 표정을 본 팀장은 또 한 번 실언을 한다.


 “너희 팀장, 이번에 부장 달았지? 나도 같은 부장이야. 오늘 나한테 잘 보이면 팀장한테 잘 말해줄게. 자, 한잔해”


 Y가 전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속에서 불이 올라왔다. 이야기만 들은 나도 화가 솟구치는데, 당사자인 동기는 얼마나 불쾌했을까? 주먹을 불끈 쥔 Y는 말을 이었다.


 “집에 가자는 게 말이 되나요? 싫은 표정을 지으니까, 직속 팀장 이야기를 꺼내며 협박하고요. 팀장이 뱉은 말을 정리하면 ‘너희 팀장에게 잘 보이려거든 나에게 잘 보여라, 그 방법은 우리 집에 가는 것이다’라고 들려요. 제가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나요?”


 “성희롱이죠. 맞고 말고요. 여자 직원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는 말을 왜 하는 거죠? 안 가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이잖아요.”

 팀장이 화장실 간 사이 Y는 동기를 집에 보냈다. 자리로 돌아온 팀장은 동기의 행방을 물었다. 통금이 있어 급하게 갔다고 얼버무렸다. 휴대폰을 집어 든 팀장은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기는 받지 않았다. 몇 번 더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들렸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팀장은 외마디 욕설을 내뱉으며 말했다.


 “남자들끼리 무슨 재미로 마시냐, 이제 정리하자. 그리고 도망간 여자애는 내가 걔네 팀장한테 말해서 정신 차리게 만들 거야”


 그 일이 있고 며칠 뒤였다. 감사 부서에서 Y를 호출했다. ‘그날’ 일 때문이었다. 술자리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을 누군가 익명으로 제보했다(동기는 아니었다). 감사 팀장은 사전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참석자, 시간 그리고 팀장이 여자 동기에게 뱉은 말 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목격자 중 한 명인 Y의 구체적 진술이 필요했다. Y는 그날 기억을 진술서에 적어 내려갔다.


 일주일 뒤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안건은 ‘직장 내 성희롱’이다. 사건이 엄중해서인지, 직원들 눈을 가리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인사위원회가 열린 시간은 모두가 퇴근한 6시 30분이었다. 회의실에 모인 인사위원들은 성희롱 사건 징계를 논의했다. 변론 과정에서 팀장이 한 말은 졸렬하고 부끄러웠다. 부장이라며 떵떵거리던 모습은 오간 데 없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안 난대요. 책임을 회피하는 만능 ‘치트키’죠. 덧붙여 이렇게 말했어요.”


 인사위원회에서 내뱉은 말을 Y의 입으로 들어봤다.


 “전, 유부남입니다. 집에 딸과 와이프가 있어요. 집에 데려간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집에 갈래’라는 말이 왜 성희롱이죠? 신체 접촉도 없었고요. ‘밤을 같이 보내자’, ‘잠자리를 하고 싶다’는 식의 직설적인 표현도 아니잖아요. 직급으로 직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건 인정하겠습니다. 단, 성희롱은 말도 안 됩니다.”


 헛웃음이 욕설과 엉켜 입 밖으로 나왔다. 술 취해 기억이 안 난다 해놓고 구체적인 상황까지 인지하고 있었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Y가 말을 이었다.


 “직책 면직, 6개월 감봉 징계가 내려졌어요. ‘보여주기 식’이죠”


 “해고가 아니라 팀장 직책에서만 짤린 거라고요?”


 “네, 맞아요. 6개월 감봉도 치킨 두 마리 값 정도라고 하더군요.”

 징계 수위를 듣고 허탈했다. 인사위원들이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져서일까? 그들이 팀장과 오랜 기간 일하며 ‘호형호제’하는 사이여서 일까? Y는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나는 ‘둘 다’라는 의견을 냈다.


 “인사위원회 후 여자 동기는 다른 지사로 발령받았어요. 팀장은 조그마한 부서에서 팀원으로 지내며 재기를 꿈꾸고 있고요. 참 뻔뻔한 사람들이죠. 만약 중징계를 내렸다면 자신들도 위험했을 거예요. 여자 직원들에게 그딴 말을 하며 노닥거리는 사람들이니까요.”


 화가 가시질 않았다. 자리에 앉아 Y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성희롱 한 사람도 잘 못이지만, 성희롱인지 모르는 사람도 똑같은 사람들이다. 이야기를 마치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침묵을 깬 건 Y였다.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 자리를 마무리했다. 어느 때 보다 무겁고 힘든 회사 이야기였다.


 “피해자가 본인 딸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회사에 찾아와서 뒤엎고 난리였겠죠. 제 동기는 남의 딸이니까요. 못 배우고 더러운 인간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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