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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Jun 20. 2021

자취방을 찾아오는 회사 선배

 “집에서 몇 번 술을 마셨더니 이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맞아요. 저희 집이 술 집도 아니고 3차를 온대요. 저도 사람들과 술자리 하는 걸 좋아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점심시간을 조금 앞두고 저를 찾아왔죠. 같이 점심 먹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대뜸 저희 집에 가도 되냐고 하더군요. 저녁엔 술 마시러 오더니 이젠 점심까지 해결하려고 했어요.”


 자정 무렵이었다. 누군가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자고 있던 X는 속옷 바람으로 일어나 인터폰을 확인했다. 문 밖에는 거나하게 취한 회사 선배가 서있었다. 맥주를 사 온 선배는 인기척이 느껴지자 문을 두드렸다. 간단하게 한 잔 하자며 문을 열어 달라했다. X는 안 된다며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현관문 앞에 서있던 선배는 인터폰에서 흘러나온 X의 여자 친구 목소리를 들었다. 그제야 야밤 불청객은 미안하다며 돌아갔다.


 “비밀 번호 바꾸길 잘했죠. 문 열고 들어왔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아찔했던 밤을 떠올린 X는 자취방을 찾아온 회사 선배와 얽힌 이야기를 했다.


 “자고 있는데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면 무섭겠어요. 그나저나 회사 선배가 집 비밀 번호를 왜 눌러요?”

 회사 선배가 X 집에 처음 온 날은 회식 날이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신 X와 동료들은 회사 근처에서 자취하고 있는 X 집으로 갔다. 지하철도 끊어진 시간이라 X 집에서 자고 출근하기로 했다. 집에 도착한 그들은 냉장고에 있는 맥주 마시며 회식을 마무리 지었다.


 “저희 집이 회사에서 10분 거리거든요. 막차가 끊기면 다 같이 저희 집에서 자고 출근했답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선을 넘는 상황이 생겼어요.”


 처음은 어려웠지만 다음은 쉬웠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회식 3차 장소가 X의 집이 되었다. X가 있는 술자리뿐만 아니라 X가 없는 술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던 X는 회사 선배의 연락을 받았다. 선배는 타 부서 사람과 술 마시는 중인데 맥주 사서 집으로 갈 테니 같이 한 잔 하자고 했다. 갑작스러운 가정 방문 통지에 집주인은 어이가 없었다.


 “집에서 몇 번 술을 마셨더니 이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맞아요. 저희 집이 술 집도 아니고 3차를 온대요. 저도 사람들과 술자리 하는 걸 좋아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회사 가까이 산다는 건 너무나 편했다. 점심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 있었다. 남들은 인근 식당에서 사 먹지만 X는 집 밥으로 해결했다. 조금 피곤한 날엔 집에서 낮잠을 잤다. 그 모습을 지켜본 회사 선배는 어느 날 X에게 말을 걸어왔다.


 “점심시간을 조금 앞두고 저를 찾아왔죠. 같이 점심 먹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대뜸 저희 집에 가도 되냐고 하더군요. 저녁엔 술 마시러 오더니 이젠 점심까지 해결하려고 했어요.”


 “눈치가 없는 걸 까요? 매너가 없는 걸까요? 이해 가지 않네요. 따끔하게 안 된다고 말해야죠.”


 X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다. 선배도 회사 상사였다. 불편한 부탁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배와 함께 집으로 가서 점심시간을 보냈다. 밥을 다 먹은 선배는 소파에 기대 리모컨을 집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중 집주인 X에게 투정 부리기 시작했다.


 “요즘 ‘넷플릭스’ 가입 안 한 집이 어디 있냐며 비아냥거렸어요. 무슨 상황인지 이해 가지 않더라고요. 제가 밥에 이상한 약을 넣은 것도 아니에요. 남의 집에 와서 밥 얻어먹고 할 소린가요?”

 화가 난 X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이어진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얼굴이 붉어졌다. 선배는 몸을 일으켜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곧이어 이불을 파고들었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던 ‘북유럽풍 차렵이불’이 구겨졌다. 동시에 X의 얼굴도 구겨지기 시작했다.


 “전 일상복 입고 절대 침대에 눕지 않아요. 깨끗하게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뛰어들죠.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철칙이에요. 그런 침대에 선배가 드러누웠어요. 남의 침대에 함부로 눕는 건 실례잖아요. 제가 너무 깔끔 떠는 건가요?”


“최악이네요. 저였다면 선배 멱살을 잡고 집 밖으로 던졌을 거예요.”


 X도 회사 선배만 아니었으면 반으로 접었을 거라며 주먹을 보여줬다. 그날 이후 선배 방문을 철저하게 금지했다. 선배뿐만 아니었다. 회사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며칠 뒤 선배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다. 쪽지를 읽은 X는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선배가 보내온 쪽지엔 X의 현관 ‘비밀번호’가 적혀있었다.


 “보자마자 선배에게 달려갔어요.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추궁했죠. 제가 문을 열 때 뒤에서 봤다고 했어요.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죠. 그날 집에 가자마자 비밀번호를 바꿨어요.”

 선배가 술을 들고 찾아온 다음날이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른 선배 행동에 화가 난 X는 선배를 찾아가 말했다. “앞으로 자취방에 찾아오지 말라”며 그간 불편했던 감정을 끄집어냈다. 선배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하며 X 마음을 더 긁었다. X는 선배가 했던 말을 나에게 전했다.


 “친해서 찾아간 건데, 너무 거리 두는 거 아니야? X 씨 우리 같은 남자끼리 까탈스럽게 굴지 말자. 그런 말 들으니까 좀 서운하다.”


 X는 선배의 말을 옮긴 뒤 덧붙였다.


 “오히려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라고요. 저보고 까탈스럽대요. 회사만 아니었으면 선배를...”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험한 말이 X의 입에서 쏟아졌다. 선배에게 쌓인 분노가 상당했다.


 “퇴근하고 집안 구석구석 잘 살펴보세요. 영화 <기생충>처럼 선배가 숨어 있을 것 같아요.”


 나의 말을 들은 X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정말 그럴 것 같다며 가장 먼저 침대 밑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느낀 점이 있다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집은 저만의 공간이란 걸 느꼈어요. 다시는 회사 사람을 들이지 않을 거예요. 회사 주변에 산다는 말도 절대 입 밖으로 하지 않으려고요. 오직 여자 친구만 저희 집에 올 수 있어요. 프리패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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