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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장 Jul 18. 2021

큰 회사에 가려는 이유

 “가장 부러웠던 부분은 OJT교육이에요. 각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체험하며 직원들 얼굴을 익혀요. 업무 매뉴얼도 받는대요. 전화받는 법과 전화 돌려주기, 당겨 받기 등 아주 사소한 것까지 책에 다 적혀있어요.”

 “CS교육이랍시고 알려준 게 있어요. 상사에게 술을 따를 땐 소주병 로고를 가려야 한다는 거요. 이게 교육인가요. 정말 갑, 을, ‘병’ 같은 회사였죠.”


 눈을 낮추라고 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했던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취업을 준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말은 참 쉽다. 결과는 온전히 나의 것인데,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떠든다. 취준생으로 돌아온 Z도 이 말을 이골이 날 만큼 들었다. 결국 눈을 낮췄다. 그가 일했던 회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기업, 중견기업만 준비했죠.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것만 해도 두 번이에요. 눈을 낮추기로 결심했어요. 작은 기업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밟고 올라가겠다고요. 바닥부터 시작하면 기본기도 탄탄해지고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죠.”

 Z가 눈을 낮추고 입사한 회사는 갑, 을, 병 중에서 을은 고사하고 ‘병’이었다. 말 그대로 ‘병’ 같은 회사였다. 명함엔 ‘광고대행사’라 적혀있지만 실상은 달랐다. 디자인 하청 업체보다 열악한 수준이었다. 모든 통화에 ‘죄송하다’와 ‘미안하다’는 말이 들어갔다. 전화번호를 누를 땐 허리를 펴고 시작했지만, 끊을 때는 책상에 얼굴이 닿을 듯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자괴감이 밀려와요. 내가 무슨 잘 못을 했길래 비굴하게 굽신거릴까 라는 생각이 들죠. ‘병’ 같은 회사에서 월급 받는 제 탓이죠. 이건 시작이에요. 정말 놀랐던 일은 입사 후 처음 맞이하는 추석이었어요.”


 광고주에게 선물세트를 보냈다. 참치와 햄이 빼곡히 들어간 노란색 선물세트였다. 며칠 뒤 선물세트가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개중에는 포장이 뜯어졌거나 참치 캔 몇 개가 빠져있었다. 광고주는 회사 사장에게 전화해서 “우리가 쓴 돈이 얼만데, 고작 이런 걸로 성의 표시하냐”며 비꼬았다.


 “더 무서운 건 상사들의 모습이에요. 전혀 당황하지 않았어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거죠. 갑질이 익숙한 거예요. 결국 한우 세트로 바꿔서 다시 조공했어요.”

 “돌아온 선물세트는 어떻게 했어요? 포장도 뜯겨있고요. 다른 거래처에 전달할 수 도 없잖아요.”


 “직원들이 챙겨갔죠. 사장이 명절 선물이라며 반품된 선물세트를 손에 쥐어 줬어요. 다행히 저는 포장만 뜯어진 선물세트를 받았죠.”


 Z와 함께 취업 준비했던 친구는 달랐다. 중견기업에 입사한 그는 명절 성과급과 ‘떡 값’으로 30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다. 하청업체 직원에게 비공식적으로 기프티콘도 받아 챙겼다. 친구는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했다. 눈을 낮춘 Z의 회사 생활은 더욱 고달파졌다.


 “회사 막내들은 30분 일찍 와야 해요. 사장실과 회의실 청소를 해야 하거든요. 거기다 화장실 휴지까지 확인한답니다. 없으면 창고에서 휴지를 꺼내 갈아야 하죠.”


 오전 업무 시작과 동시에 휴대폰으로 사장 번호가 찍혔다. 전화를 받자 사장은 욕설로 Z를 맞이했다. 화장실에 큰 일 보러 왔는데 휴지가 없다며 Z에게 빨리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Z는 창고로 달려가 점보롤 화장지를 들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닫혀 있는 화장실 문을 두드리자 사장이 대답했다. 열린 문 틈으로 화장지를 들이밀자 사장은 왜 이렇게 큰 걸 주냐며 호통쳤다. 케이스를 열고 휴지를 끼우면 된다고 설명했지만, 사장은 일 보는 중이라 손이 안 닿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Z는 안으로 들어가 점보롤 화장지를 끼워줬다.

 “못 볼 꼴까지 다 본 사이가 됐어요. 냄새가 얼마나 나던지, 아무튼 휴지를 끼우고 가려는데 문밖에 서보래요. 그때부터 사장의 폭풍 잔소리가 쏟아졌죠. 청소가 미숙하다느니, 꼼꼼하지 않다느니 하면서요.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온갖 질책을 받았어요.”


 “사장이 대단한 사람이네요. 뒤처리를 하면서 잔소리까지 하는 걸 보면요.”


 대기업에 취업한 Z의 친구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시설 관리하는 업체에서 회의실, 대표실 등 사무실 청소를 담당했다. 화장실 청소와 휴지 교체도 물론이다. 친구 회사에선 자기 자리만 청소하면 된다. 시설 유지보수 업체에서 일주일에 한 번 살균 소독까지 진행했다.


 “같이 취업 준비한 친구들의 소식을 많이 듣죠. 저와 다른 삶을 살고 있어요. 그중 가장 부러웠던 부분은 OJT교육이에요. 각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체험하며 직원들 얼굴을 익혀요. 업무 매뉴얼도 받는대요. 전화받는 법과 전화 돌려주기, 당겨 받기 등 아주 사소한 것까지 책에 다 적혀있어요.”

 “‘병’ 회사에선 교육이 없어요? 신입 때는 많이 배워야 하잖아요.”


 나의 질문에 Z는 웃으며 대답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었다.


 “CS교육이랍시고 알려준 게 있어요. 상사에게 술을 따를 땐 소주병 로고를 가려야 한다는 거요. 이게 교육인가요. 정말 갑, 을, ‘병’ 같은 회사였죠.”


 대기업, 중견기업에 간 친구와 가장 크게 차이 나는 건 ‘연봉’이었다. 연봉 앞자리가 달랐다. 물론 Z가 낮았다. ‘병’ 회사 과장의 월급이 친구 회사의 신입 초봉과 비슷했다. 성과급을 받으면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눈을 낮춘 대가는 혹독했다. 열악한 환경과 부끄러운 연봉이 Z의 현실이었다.


 “월급날은 매달 10일이에요. 만약 10일이 일요일이면 월급은 언제 들어와야 하나요?”


 Z의 질문에 당연하게 ‘8일 금요일’이라 답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병’ 회사에선 11일 월요일에 들어와요. 카드값, 보험료, 휴대폰 비는 8일에 다 빠져나가거든요. 선배 한 명이 사장에게 8일에 월급 넣어달라고 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어요. “월급날은 10일인데, 8일이 10일이냐”고요. 그렇다면 10일 일요일에 넣어줘야죠. 왜 월요일에 주는 걸까요. 작은 회사라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않아요. 모든 게 사장 마음이죠.”

 눈을 낮췄던 Z는 6개월 만에 사직서를 냈다. ‘밑바닥부터 시작하겠다’는 다짐도 사라졌다. Z가 일하며 느낀 점이 있었다. 병, 정 위치의 회사에선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갑에서 을, 병으로 갈 순 있다. 하지만 병에서 을이나 갑으로 갈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시작을 높은 곳에서 하면 그만큼 기회도 많을 거라 Z는 생각했다.


 “제 생각이 틀렸어요. 6개월간 정말 힘들었어요. 갖춰진 곳에서 시작해야 해요. 내 인생이 이 정도 수준에서 끝날까 봐 두려웠거든요. 아직 이십 대니까요. 조금 더 준비해서 대기업, 중견기업처럼 큰 회사에 갈 거예요.”


 이야기를 마친 Z는 토익 학원으로 갔다. 다음 달이면 토익 점수 만료라 시험을 다시 치러야 했다. 그 외에도 다시 준비할게 많았다. 들거나 지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취준생으로 돌아온 Z의 눈빛에서 결연함이 느껴졌다. 그가 ‘큰’ 회사에서 꿈을 펼치길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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