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알리는 기획의도
서른이 되었다.
10년 전, 내가 보았던 서른은 진짜 '어른'같았지만, 사실 몇 년 전과 지금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 차이를 느끼는 건 사람마다 다른 걸까? 작년의 나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말의 무게 정도일까? 감정에 따라 입에서 깃털처럼 날아간 말은, 누군가의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로 내려앉거나, 날카로운 비수로 꽂혀버릴 때가 있다. 때로는 그 반대이기도 하다. 세상 어떤 달콤한 디저트보다 효과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달래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의 기분까지도 고양된다.
나는 별로 특출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 ‘다정한 어른’이 되자는 다짐을 하고 있다. 조금은 꼰대처럼 보일지라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원하던 바들을 천천히 하나씩 이루고 있지만 딱히 무엇 하나 뛰어난 점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말하면 어릴 때는 다른 친구들보다 이해나 암기가 느린 편이라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필요한 내용을 달달 외워야 했다. 스스로 난 정말 머리가 안 좋나 보다, 잠시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난 오래 생각을 하기보다, 그냥 움직이는 스타일이었다. 시험을 대비한 예습과 복습은 내게 대단한 성적을 위한 학습이 아닌, 보통이라도 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이러한 내 노력과 행운이 겹쳐 내 삶이 꽤 재미있게 굴러간다고 생각했다. 25살에 광고회사 대표가 되고, 지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에 내 회사의 터전을 사들였다. 가족들의 경제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었다고 추측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오롯이 나의 노력과 여러 행운이 겹쳐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내 삶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던 뿌리는 바로 다정함이었다. 나의 다정한 조력자들과 상냥한 순간들이 나를 이끌어주었던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 나를 스쳐 지나간 소중한 인연들과 사건들이 내게 기꺼이 내어준 다정함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나의 현재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만나온 다정함들이 지금의 내 성공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살수록 말하는 게 어렵다고 느낀다. 나는 전달력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른의 첫 시작점이었던 대학 생활에서도 나만 느낄 수 있는 은근한 따돌림을 당해 보기도 하고, 첫 직장생활인 인턴생활에서 조직에 분란을 일으키는 꼴통이었다. 돌이켜보면 억울하지 않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서도 알아주길 원했던 투정이 부끄러울 뿐이다.
내 마음이 얼마나 따뜻하고 깊은 이유가 있는 행동이더라도, 결국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확실하게 전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듣고 싶은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 누구나 직관적이되, 다정하게 이야기해 주길 원한다. 내가 야단맞는 입장이라면,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피드백을 받으면 좋을지 먼저 상상해 보는 것이다.
더 과거의 나는, 오늘만 살 것처럼 오늘을 대했다. 나는 별로 특출 난 편이 아니었기에, 메일 하나를 작성하는 것에도 각이 잡혀있었다. 표정을 한껏 굳어 있어도 텍스트에는 웃는 이모티콘을 몇 번이나 썼는지 모른다. 활자만이 언어는 아닌데 말이다.
지금 쓰는 글들에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살던 내가, 지금의 일상과 순간의 행복에 집중하게 된 일련의 사건들을 담아보았다. 지금의 나를 이뤄온 것은 무엇일까? 지금의 나를 꽉 채우고 있는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어떤 단어가 가장 적합할까?
다시 한번 돌이켜 보아도, ‘다정함’이다.
나아가 ‘다정함은’ 세상을 더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다정함을 가진 사람은 엄청난 지능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다정함’은 상대를 무안하게 하지 않는 배려와 상대를 안심시키는 반듯함이다. 똑똑함은 자신을 위해 쓰이는 지능이고, 다정함은 타인을 위해 쓰는 지능이다.
똑똑한 사람은 식당에 갔을 때, 숟가락과 물 잔에 때가 묻진 않았는지, 음식의 맛과 향이 어떤지 살핀다. 다정한 사람은 식당에 갔을 때 상대의 자리가 더럽지는 않은지 실 피고 상대의 수저와 물 잔을 챙겨준다. 똑똑한 사람은 대화를 나눌 때 상대가 말하는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옮고 그름을 따지지만, 다정한 사람은 대화를 나눌 때 상대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표정을 읽어가며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고르고 솎아낸다. 모두가 필요한 사람이지만, 우리는 때때로 다정한 한 마디, 작은 상냥함을 몰라볼 때가 있다.
앞으로도 다정함의 가치가 더욱 주목받고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