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석사의 성적은 Pass/ Merit/ Distinction으로 표기된다.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대략 비율이 Pass는 50% 이상, Merit는 60% 이상, Distinction은 70% 이상이다. 51점 Pass나 58점 Pass나 같다. 즉, 이를 구분하기 위해 표현되는 점수는 의미가 없고 점수가 분포하는 영역인 Pass /Merrit / Distinction만 의미가 있다. 한국 학부시절에는 보통 상대평가였기 때문에, '석사 통과율이 50%밖에 안 되는 건가?'라고 걱정했는데 영국의 석사과정은 절대 평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업이나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었고, 나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다양한 참고자료를 찾아보는 것에 더 치중할 수 있었다.
과제는 보통 에세이를 쓰는 것이었는데, 주제와 문제가 여러 개 주어지고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논리적으로 기술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 수업시간에 다루었던 주제들이고 그중에 내가 조금 더 관심 있고, 알아보고 싶은 것을 보통 선택한다.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을 과제로 제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주제를 더 깊게 흥미롭게 공부한다는 점이 좋았다. 제출된 과제는 담당 lecturer와 조교들을 통해서 채점이 되는데, 70점 이상인 Distinction을 받기는 꽤 힘들어 보였다. 우리 과에서는 과제 하나당 Distinction을 받는 친구들이 극소수였기 때문에 금방 소문이 났다 (물론 학교와 과마다 차이가 있다). 객관적인 채점 기준이 있긴 하지만, 성적을 채점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의견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에 성적에 대한 complain이 학생들로부터 종종 있었지만 정정되는 경우는 많이 없었다. 반면, 남편의 경우 공대였기 때문에 과제가 주로 문제 풀이였고 정답과 풀이 과정에 따라 점수가 매겨지기 때문에 채점기준이 에세이보다는 더 객관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 성적 complain이 종종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논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과에서 Distinction을 받는 학생들은 손에 꼽는다 (이 비율도 학교와 과마다 차이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Distinction을 받은 학생들은 성적 발표 전 지도 교수로부터 저널 등에 출판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박사논문도 아닌 석사논문을 출판하는 것이니 정말 Outstanding 해야 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보통 이 정도 받아야 후에 박사 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유리하다고 한다.
과제나 시험에서 Fail을 하는 경우도 있다 (50% 미만). 그렇지만 과제(에세이)의 경우 2개 정도 제출하고 팀 프로젝트가 있기 때문에 만회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Fail은 드물다. 물론 이 항목도 기준이 학교별 전공별로 제각각이다. 우리 과의 경우에는 전체 수강한 과목 중 2개가 Fail 하면 해당 연도에 학위 수료를 할 수 없다. 영국이 외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장사를 하다느니 Cashcow라는 말을 인터넷이나 주변으로부터 가끔 들어왔던 터라 사실 Fail을 얼마나 주겠나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런 부분을 체감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재시험 때문에 여름에 한창 바빴던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재시험률은 대략 10% 정도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으나 논문 통과가 되지 않아 제출을 내년까지 미룬 학생도 몇 있긴 했다.
나의 경우 학부가 공대였으니, 에세이를 쓴다는 것이 굉장히 낯선 것이었고 그것도 영어로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제공하는 Writing lab 서비스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다. 과제가 있을 때마다 미리 예약을 잡아서 클리닉을 받았는데, 글의 흐름, 논리, 어색한 표현 등을 30분 정도 교정해 주는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보통 박사 과정 학생들이 튜어가 된다. 논문을 준비할 때도 이 Writing lab 서비스를 활용했는데, 학기 중에 있었던 에세이 과제와 다르게 논문이기 때문에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글의 논리와 흐름을 잡는 데에 도움을 준다. 물론 학기당 서비스 이용 횟수는 4번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Writing lab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서비스가 아니었는지 나는 비교적 여유롭게 도움을 받았고 과정을 잘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