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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대생이 느낀 경제학이란?

by 스윗스윙

퇴사를 결심하고 유학을 준비하면서, 어떤 계기가 있어서 혹은 경제학에 원래부터 흥미가 있어서 전공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 원래 전공(공학)을 살려 외국 대학원으로 진학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여전히 학부시절 배우던 역학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대학 4년 동안의 자기 성찰을 한 결과 나는 물리나 수학에 그렇게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크게 흥미가 없다는 것이 명백했기에 큰돈 들여가는 것 공학을 다시 선택할 수는 없었다. 짧은 석사 기간 동안 내가 얼마나 학문을 탐구를 하겠냐는 생각도 좀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조금 관심이 있었던 학문인 경제분야(순수 경제학은 아니지만)를 택했다. 뉴스나 신문을 보면 경제가 항상 언급되는데,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데 경제가 중요한 topic인데, 내 뇌는 이쪽 관련해서는 아주 순수하니까 배워보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학도가 경제학을 안다는 것이 뭔가 스스로 매력적으로 보여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근데 마침 내가 전공한 것과 경력과도 연관된, 뭔가 이것저것 섞인 미래지향적인, 에너지와 환경을 토대로 한 경제학 수업이 마침 영국에 있었다. 물론 마지막까지 환경공학이나 환경 경제냐를 고민하긴 했지만, 이왕 간 것 한국에 없는 전공해보자는 도전적인 마인드로 후자를 택했다. 물론, 커리큘럼이나 배우는 과목들이 훨씬 더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다.


수업을 못 따라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학교에서 비경제 전공 학생들을 위해 미시경제 수업을 입학 전에 2주 넘게 별도로 강의를 해줘서 미시경제학 책 한 권을 아주 밀도 있게 끝냈다. 과의 특성 때문인지 학생들의 학부 전공이 다양했는데 50% 정도는 경제학, 40%는 공학(기계, 전기, 토목 등), 10% 정도가 기타 인문학, 자연과학 (생물, 지질, 지리 등)이었다. 생각보다 공학 베이스로 온 친구들이 많아서 놀랐는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경력과 맞물려 이 분야의 장래성을 보고 온 친구들이 많았다. 특히, 직장 경력이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고 나름 Risk를 안고 온 것이기 때문에 진지했고,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와 공부를 한다는 것에 다들 열의에 불탔다.

눈 오는 날 도서관에서

초반에는 한국의 고등학교 미분 정도의 수학 개념을 가지고 수업이 이루어져서 할만하다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말도 헷갈리고, 공업수학에서 쓰는 좌표와 읽는 방법이 다른 좌표도 헷갈리고, 총체적 난국 상태에 이르렀다. 앞서 압축해서 끝낸 미시경제는, 환경경제학을 위한 밑바탕일 뿐이었다. 한국말로 해도 이게 이해가 될까 말까인데, 영어로 하니 어느 순간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나의 이런 현상은 비 경제학 전공 학생들에게 비슷하게 일어났다 (이 때문에 스터디 그룹까지 생겼다!). 모르는 부분이 누적되다 보면 뒤에는 더 큰 난리가 날 것 같다는 불안함에, 어떻게든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로 된 미시경제학 전자책을 구입해서 새벽까지 복습을 했다. 학부생을 위한 미시경제이론 인터넷 강의도 매일 찾아 듣고, 친구들에게 매일 물어보고 도서관에서 토의하고 스터디를 하면서, 한 학기는 그런 식으로 공부를 계속했다. 김미경 강사가 말하길 '내 앞의 무능을 직시해야 유능해진다'라고 했던가. 유능해진 건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무능을 정확하게 직시했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 맨 처음에는 나만 모르는 것 같아서 끙끙 싸매고 있었는데, 옥스퍼드나 캠브릿지 MIT와 같이 유수의 대학을 나온 똑똑한 친구들도 모르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항상 질문하고 소화시키려는 노력에 특히 자극을 받았다. 저런 친구들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소심한 태도로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누구나 처음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이 당연한 진리를 빙빙 돌아서 그리고 경제를 공부하며 깨닫긴 했지만, 어쨌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지 무사히 해당 과목을 마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과 다른 것이 있다면, 머리는 그때만큼 잘 안 돌아가지만 정신력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해서 새벽에 공부해도 졸음 한 번이 오지 않았다. 확실히 마음가짐이 달랐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공부할 당시에는 경제학이 뭔가 말장난하는 것 같아서 이건 도대체 무슨 학문인가 생각하면서 짜증이 나기도 했었는데, 고생을 하긴 했지만 주변과 함께 하나하나 모르는 것을 깨뜨려가는 기쁨을 느낀 것이 얼마 만이었는지 모른다. 공부도 공부지만, 분명한 것은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나의 삶 속에서 어떤 자극이 되었다.


물론, 에세이를 내고 시험을 보고 나니 늘 그렇듯 머릿속이 또 하얘졌다. 그렇지만 내가 초반에 이 공부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 비추어보면, 나는 이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경제가 돌아가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고 (덕분에 이제는 경제 관련 서적도 잘 읽히고), 이와 관련하여 정치와 글로벌 이슈에도 관심과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에너지, 환경과 관련된 경제가 유럽에서 계속 퍼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과 비전에 대한 다양한 방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공학과 경제학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스스로 조금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다. 뭐, 그거면 내가 경제분야를 공부해서 얻은 것이 충분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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