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 정도부터 학기가 시작했는데 여러 회사들이 리쿠르팅을 10월부터 시작했다. 아니 난 학교에 적응하기도 바쁜데 리쿠르팅이라니. 매일매일 금융/공학/국제기구/IT/컨설팅 등으로 직군을 나눠서 캠퍼스 리쿠르팅이 이루어지는데, 회사는 엄청 많은 반면 외국인에게 비자를 내주는 곳은 많이 없었다. 브렉시트로 인한 불안정한 정세도 이에 한몫했다.
우리는 경력이 10년 이상 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경력직으로 쓰기에는 뭔가 애매했다. 그래서 일단 리쿠르팅을 하고 있으니, 남편과 나는 Graduate scheme (한국으로 말하면 졸업생 대상 공채?)으로 학교 갔다 돌아오면 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원서를 쓰면서 한국과 달랐던 점 몇 가지는, 사진이나 가족 사항, 나이를 언급하는 부분은 없었고, 오히려 나의 국적과 성 정체성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니면 그 외의 다른 성인지, 성전환 수술을 했는지)을 물었는데 좀 신선했다. Cover letter / CV 말고도 한국 기업들처럼 자소서 비슷한 것을 쓰는 곳이 제법 많았기 때문에, 작성하는데 시간이 제법 많이 들었다. 하루에 3-4개 쓰면 많이 쓴 편이었다.
가을학기에 남편과 둘이서 100개 정도의 원서를 썼는데, 비디오 인터뷰까지 간 것은 2-3개 정도였다. 확률로 따지면 2-3% 정도. 12월에는 거의 지쳐서 쓸 의욕도 없었는데, 남편이 지원한 회사 중에 언제 썼는지도 모르는 곳에서 면접 이메일을 받았다. 결국 둘이 쓴 100개가 넘는 지원서 중에 최종 인터뷰를 한 곳은 한 곳이었으니 확률은 1% 미만이다. 1% 미만이면 어떠하리 높은 확률로 여러 개 최종을 가도 결국 마지막 하나만 통과하면 되는데. 한국에서도 재취업한다 해도 매한가지 아닐까 싶었다. 정말 힘들게 얻은 찬스였기 때문에 둘이서 이주 동안 스파르타 훈련을 했다. 한국에서처럼 면접에서 나올 만한 질문을 30개 뽑아서 대본을 만들고 훈련(?)을 했다. 동양 문화권이랑 인터뷰 질문에 차이가 있을 것 같아서 주변의 직장 경험 많은 영국 친구들에게 소스를 구하기도 했다. 나는 면접관이 되어 한 질문 나올 수 있는 꼬리 질문들과 돌발 질문들을 줄줄 만들었고 남편은 이에 맞게 입에 붙도록 연습을 했다. 툭 치면 나올 정도로 연습을 2주 정도 했고, 떨어지더라도 후회는 없다의 마음으로 남편은 면접장으로 향했다.
지금부터는 남편의 면접 경험담이다. 면접장에는 열댓 명 정도가 있었는데 모두 영국인이었고 남편 혼자 외국인에 동양인이었다. 한국 기업의 면접과 정말 유사하게 그룹 면접, 실무진 면접이 있는데 하루 종일 면접을 한다. 낯선 주제들이기 때문에 어떤 주제던 '논리력'을 중요하게 보는 것 같았고, 임원이 아니라 정말 이 사람과 일할 실무진들이 면접을 본다. 한국말도 아니고 영어로 해야 하니 상대방을 100%를 이해시키지는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논리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려고 했다고 한다. 이주 정도 지났을까, 남편이 합격 전화를 받았다. 정말 기뻤다. 열심히 준비한 것도 사실이지만 둘 중에 한 명이 취업할 확률 50%를 통과해 우리의 도박이 일단은 성공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나중에 딴소리할까 봐 얼른 연봉이 적힌 계약서에 사인을 해서 보냈다 (양심적이게도 신입 연봉이 아니라 경력을 인정해 주었다) 남편은 경력이 아닌 Graduate scheme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신입 때 하던 것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냐 약간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영국의 회사 구조, 문화는 한국과 제법 차이가 났으니까 말이다.
한 명이 한 학기 마치고 취업이 되었기 때문에,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겨서인지 우리 둘은 남은 학기와 논문 준비를 조금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 생각했던 실험적이고도 단순한 75% 확률이 다행히 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기도 했다. 이제 이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니, 맘껏 즐겨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