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는 보통이 아니다
지수 투자가 지니고 있는 많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지수 투자보다는 개별 종목 투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지수 수익률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지수보다 못하거나 손실로 투자를 마감하게 됩니다.)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지수에 투자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수에 투자하기에는 뭔가 아쉽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펀드매니저들도 지수를 이기기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지수란 녀석은 왠지 만만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수를 이기기 어려운 이유에 대한 보편적인 설명은 시장수익률을 능가하는 주식은 소수이기 때문에 시장을 이기는 주식들을 골라내는 것이 확률적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감성적으로는 단순한 계산으로 만들어진 지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투자자가 실력이 있어 좋은 주식을 골라낼 수만 있다면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달리 말하면 지수는 별거 아닌데, 투자자들이 전반적으로 멍청하기 때문에 단순한 지수를 이기기 어렵다는 얘기 같습니다. 본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시장을 이길 가능성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설득하고자 합니다. 저를 포함한 여러분들이 멍청한 것이 아니라, 지수라는 놈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지수는 일반적으로 시가총액 가중 방식으로 산출됩니다. (시가총액 = 주식가격 X 유통주식 수) 시가총액이 높을수록 지수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시가총액이 낮을수록 지수에서 비중이 줄어들게 됩니다. 증자나 기업공개 등 이벤트가 있지 않다면 일반적으로 시가총액은 주가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주가가 오르면 시가총액이 증가하고 주가가 내리면 감소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상장된 A 기업이 주가가 오르면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게 되고 주가가 떨어지면 비중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제 지수가 주식들의 시가총액 비중으로 결정된다는 이 단순한 내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겠습니다. 주가가 계속 오르는 기업은 코스피에서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주가가 줄곧 하락하는 기업은 코스피에서 비중이 점점 감소합니다. 주가지수에 투자하면 포트폴리오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더 오른 주식의 비중이 증가하고, 남들보다 덜 오르거나 떨어진 주식의 비중은 계속 줄어들게 됩니다. 매 순간 치열한 시장의 경쟁 결과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내 포트폴리오에 자연히 반영된다는 뜻입니다.
지수는 수많은 투자자들의 경쟁과 투쟁의 결과가 반영된 산물입니다. 지수 입장에서 보면 기관들도 지수를 만들어내는 부속품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하물며 개인 투자자들은 어떨까요? 지수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시장 지식의 총집합이며, 투자의 대가들도 그토록 알고 싶어 하던 시장의 비밀, 미스터 마켓의 다른 이름입니다. 지수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부족함 때문이 아닙니다. 우주에 속해 있는 인류가 우주의 원리를 다 알지 못하듯 투자자가 시장을 속속들이 알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시장의 비밀을 알지 못해도 그 위에 올라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며, 우리가 존 보글에게 그토록 감사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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