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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운욱 눈사람 Oct 29. 2023

금융시장을 대하는 자세 2

가짜 재테크를 아시나요?

<가짜 노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만들어내는 움직임들, 노동이 실제로 창출하는 성과와 상관없이 바쁘고 능력 있는 회사원으로 보이기 위한 업무들을 모두 가짜 노동으로 정의한다고 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9012769에서 인용) 목적도 결과도 불분명한 회의를 위한 회의, 한 번 보고 버려지는 보고서, 생색만 내기 위한 발표 등이 이런 일에 속할 것입니다.


디자이너는 패션쇼에서 다양한 색상의 개성 있는 옷들을 모델에게 입혀 런웨이에 선보입니다. 언론들은 올해의 패션 트렌드는 무엇이며 유행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정보를 쏟아냅니다. 런웨이의 신상품들이 매장의 중앙을 차지하면, 많은 이들이 개장 전부터 매장에 줄을 섭니다. 그런데 패션쇼에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쇼가 끝나면 디자이너가 나와 인사를 하는데, 정작 디자이너는 모델들이 입었던 옷을 입고 있지 않습니다. 앙드레 김은 하얀 옷만 입는 것으로 유명했지요.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는데, 대중은 신상품이나 유행을 맹목적으로 추종합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2차 전지를 비롯한 유망 산업, 국내외 통화정책, 금융시장 지식, 트레이딩 기술 등등. 공부할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렵고 분야도 많지만 이런 것들을 알아야 제대로 주식투자를 하고 향후 10배, 100배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맹목적인 공부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신상품이라면 닥치는 대로 사 모으는, 패셔니스타 추종자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중요한 질문. 그 질문들을 한번 해봅니다.


1. 부자 되는 방법이 주식 트레이딩밖에 없는가?

2. 트레이딩 규모와 수익이 노력 대비 의미가 있는 수준인가?

3. 내가 트레이딩에 적합한 사람인가?


정신없이 주식 관련 지식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아마 다음과 같은 구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생활이 어려운 하위 30%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재산증식에 관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중에 투자금이 부족한 사람은 종잣돈부터 모아야겠지만, 돈이 몇 백만 원이라도 있으면 굴려서 빨리 키워야 합니다. 투자도 경험이 중요하니,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주식투자 경험을 쌓으면 부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생각하는 ‘뇌피셜’ 분류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재산증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형편이 나아지면 당연히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을 것입니다. 이런 가정 하에서 전 국민의 하위 70%가량이 종잣돈을 모아야 하는 단계라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최소 종잣돈은 대출을 다 갚은 후 남은 여윳돈 1억 원입니다. 부자가 되려면 자산관리를 해야 하고 자산관리를 하려면 먼저 자산이 있어야 합니다. 1억 원에 미치지 못하는 돈은 자산이라 부르기에는 민망하고, 기본적인 분산투자를 하기에도 애매한 금액입니다. 1억 원을 넘어 본격적으로 자산관리나 재산증식 방법을 익히고 배워야 할 그룹은 전체의 29%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 트레이딩을 반드시 해야 하는 사람은 전체 기준 3%도 안 됩니다. 투자성향 상 안전한 방식의 투자방법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을 10명 중 1명으로 가정했을 때 계산입니다(=29%*1/10).


눈사람의 ‘뇌피셜’ 분류대로 트레이딩을 배워야 하는 인구가 전체의 3%도 안 된다면, 왜 이렇게 트레이딩 관련 콘텐츠가 난무하는 걸까요? 제 옆자리에서 일하는 동료는 아마추어 농구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입니다. 우연히 농구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미국 NBA 농구는 보지 않고 한국 KBL 농구를 본다고 합니다. NBA를 보지 않는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의 플레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더군요. 덩크슛을 손쉽게 하고 제자리에서 1m 넘게 점프하는 괴물들의 플레이를 아무리 많이 봐봤자, 자신의 실력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전세계의 농구 컨텐츠에서 NBA의 비중은 단연 압도적입니다.


물론 2천만 원으로 10억 원을 만든 사람이나, 100억 원을 넘게 굴리는 슈퍼개미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부자 안 된 사람이 더 적을 겁니다. 마이클 조던이나 메시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워런 버핏이나 피터 린치의 수익률은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펀드매니저들이나 코스피 지수의 수익률은 우스울 따름이지요.


부자가 되려면 저축에서 투자로 넘어가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투자의 의미는 적극적인 매매를 중심으로 하는 트레이딩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것, 개인이 종잣돈을 모아서 부동산을 사는 것, 자영업자가 매장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 직장인이 대학원에 다니는 것도 모두 투자입니다. 트레이딩은 투자의 여러 분야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일 뿐입니다. 가장 심각한 부작용은 장사에 소질 있는 사람, 훗날 스타가 될 사람, 미래의 미슐랭 요리사, 장차 칸의 주인공이 될 영화감독들이 트레이딩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트레이딩하는 사람들은 여의도 인구만으로도 아주 충분합니다.


금융시장에서 우리는 관중이지 플레이어가 아닙니다. 플레이는 자신의 본업에서 하는 것이죠. 금융시장은 좋아하는 스포츠를 보듯이 즐기면 됩니다. 좋아하는 금융시장 플레이어가 있다면, 팬카페에 들어가듯 그 사람이 운영하는 펀드에 투자하면 됩니다. 금융시장에 직접 뛰어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면, 모두가 정신없이 팔아치울 때 살짝 발만 담가본다는 느낌으로 치고 빠져야 합니다. 일반인이 격투기 선수를 다운시키는 방법은 쓰러지기 직전의 선수에게 다가가 한대 치고 도망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기는 줄 알고 링 안에 계속 남아 있다가는 앰뷸런스나 병상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금융시장에서 고수익을 내지 못한다고 멍청한 것이 아니며, 고수익을 낸다고 똑똑한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요리를 잘 하고 못하는 사람이 있듯이, 단지 잘하고 못하는 것의 차이일 뿐이지요. 이걸 알지 못하면 함정에 빠집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는 많은 고학력자들이 투자에서 실패를 경험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부자가 되는 것이지, 금융시장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부자는 사업에 성공한 중소기업 사장님이나 근검절약으로 건물주가 된 사람들입니다. 부자가 되려면 어려운 투자기법을 구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입과 자산을 늘려야 합니다. 현란한 재테크 트레이딩 기술을 연마하고 있는 당신, 가짜 재테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른이의 돈 되는 생활 - 예스24 (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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