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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Nov 10. 2023

나에게 일감을 주기로 했다.

내가 나에게 일감을 주기로 한 이유에 대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다. 여행작가는 어딘가에서 강의 요청을 받아야, 취재 요청을 받아야, 일을 할 수 있는 구조이다. 수요가 많으면 그만큼 왕성한 일을 할 수 있지만 없다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불안하다. 대부분의 창작자, 1인 프리랜서들이 그렇지 않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다. 어디도 나의 창작물을 원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내 창작의 속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때 마음이 약해지고 잠시 글쓰기나 취재를 멈추게 된다. 


그중에는 수요가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고 늘 꾸준한 속도로 창작을 하는 이들이 있다. 열정을 넘어 창작에 대한 태도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대게 일정한 속도로 꾸준하게 창작활동을 하시는 분들은 실력이나 메시지도 탄탄한 편이다. 사람들의 취향이 빠르게 바뀌는 속도만큼 창작자도 반짝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요가 있든 없든 꾸준히 작업하는 사람들은, 내용이 탄탄하고, 대체로 작품은 좋은 편이다. 길고 오랫동안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꾸준한 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감이 있든 없든 나에게 일감을 주기로 했다. 마침 책 1권 집필이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 또 다른 책을 드로잉을 해야 하는 책인데 아직 2달 정도 여유가 남은 상태이다. 그 사이에 내가 원하는 창작물을 내가 나에게 일감을 줘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선 첫 번째 창작물은 '나를 위한 노트'를 만들 계획이고, 두 번째 창작물은 약국을 주제로 만든 사진엽서집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나에게 일감을 줘서 좋은 점은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롯이 내 생각만으로 빠르게 판단하여 일을 추진할 수 있다. 물론 판단은 곧 책임이기에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이 적극 반영된다는 점은 재미있게 창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여러 사람과 함께 창작물을 만들 경우, 전시를 할 경우 내 뜻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든 일정과 준비는 상호 협의를 통해 이뤄진다. 내가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내 작품이 벽면에 걸어야 효과적일지라도 서로 약속하지 않으면 내 맘대로 일정이나 배치를 수정할 수 없다. 타인을 통해 일감을 받는 건 퀄리티는 기본이고, 신뢰가 두터워야 가능한 문제라 상호 협의는 필수이다. 내 뜻대로 설득하거나, 타인의 의사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일감을 주는 건, 스스로 일정도 조율할 수 있다. 마감일도 내 체력에 따라 안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에게 일감을 주면, 내가 생각한 창작물이 다른 사람들도 필요로 하는지, 원하는 창작물인지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타인에게 돈을 받고 창작물을 만들기 시작한 뒤 출시를 하면 어느 정도 '이건 수요가 있을 거야.'라는 전제로 작업을 하게 된다. 시장 반응은 정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먼저 나에게 일감을 줘서 검증을 해보면 더 빨리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감으로 시장 반응을 보는 게 아니라 정말 이 콘텐츠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콘텐츠인지 직접 실전에서 체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창작에 대한 태도를 갖출 수 있다는 점이다.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느슨한 자율성 가운데 약간의 강제성과 긴장감이 필요하다. 나에게 일감을 줌으로써, 해야 한다는 강제성과 원동력이 생긴다. 물론 나와의 약속이기에 느슨해질 수 있지만, 하고 싶은 창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원동력이 되어 느리지만 꾸준히 작업을 해갈 수 있게 만든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창작을 마무리했을 때 오는 기쁨, 성취감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나에게 일감을 준다는 건 나를 믿는다는 의미와도 같아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 상황을 창작 속에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출산 직전 두렵고, 출산 후 몸이 부치는 환경이라도, 어떤 환경도 창작의 재료가 되어 나를 성장시키는데 보탬이 된다. 


일감을 타인에게 의존하는 순간 타인의 취향, 대중성에 얽매이게 된다. 이는 자존감과도 연결이 되어 만약 잠깐의 공백기가 생길 경우 마음에 상처가 생기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스스로 만드는 일감이 있다면 시간 관리가 다소 어렵긴 해도 창작자로서 잃을 것보다 얻는 점들이 많다. 오늘부터 내가 나를 믿으며, 일감을 주기로 했다. 가끔은 도전적이고,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감을 내게 마구마구 던져줘 나를 충분히 성장시키며 평생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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