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자리에 홀로 남는다는 건
바람 부는 긴 사막의 모래밭에 억지로 두발을 찔러 넣어야 하는 것처럼
지루하고 고단할 때가 있다.
여행은 늘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정든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지만,
헤어짐은 매번 나를 힘겹게 한다.
며칠 동안 끊이지 않는 웃음으로 파리를 휘어잡고 다녔던 동행이 떠나는 날,
그렇게 혼자 길을 나서야 했던 날,
우리는 각자 이곳에 와 이곳에서 만나 그저 며칠을 함께 걸은 것뿐이었지만
푸른 하늘과는 반대로 내 마음은 점점 흐려져만 갔다.
동행이 떠나고 다음 날,
괜스레 우울해진 마음을 안고 차갑고 흐렸던 파리의 아침 공기를 가르며
영화 ‘아멜리에’의 주인공 아멜리에가 물수제비를 뜨던 곳, 생마르탱 운하로 향했다.
이제 막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 틈에서 길을 잃고 두리번거렸다.
이정표 하나 없는데, 지도는 꺼내기 싫고,
아무 곳이나 걸어가 보는 모험도 지겨운 일이었다.
겨우 찾은 그곳은 거리와 강물이 닿을 듯 찰랑였고
센 강은 눈부셨지만, 그 자연적 눈부심조차도 달갑지 않았다.
그냥 걷고, 또 걸었다.
문 연 카페도 없고 파리의 그 흔한 벤치도 잘 보이지 않았던 운하 어디쯤.
나는 사탕 뺏긴 아이처럼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았다.
이른 오후, 결국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이 시작된 지 몇 주 후의 일이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는 여행 슬럼프에 콱- 물려버렸다.
이렇게 여행 슬럼프에 물려버릴 땐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다.
숙소에 있고 싶으면 애써 밖에 나가지 않고,
공원에 앉아 있고 싶으면 하루 종일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그저 하염없이 발길이 닿는대로 길을 걷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스멀스멀 다시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피어난다.
다시 모든 것에 호기심이 생기고 궁금해진다.
여행에서도 삶에서도 가끔은 쉼표가 필요한 법이다.
여행을 한다고 매일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다.
긴 여행이 때론 지루하고 지겨울 때도 있다.
그런 시간을 겪으며 나는 무언가를 이겨내고 극복해내는 법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것마저 여행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