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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윤 Nov 01. 2020

비록 연봉과 베네핏이 없을지라도

Epilogue

더웠다.

평일 낮 오후 두 시의 산책과 조깅은 잘못된 선택(남들과 다른) 인건 아닐까 라는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 누군가가 회사 책상 앞 차가운 AC바람 안에, 푹신한 오피스 체어 위에 앉아 있는 동안 다리 근육을 조지며 걷고 달리는 내가 이긴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들에게 존재하는 연봉이라는게 나에게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이겼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그들이 쾌적한 에어컨디셔너 속에서 굿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 나는 작열하는 햇빛과 땀에 쩔어 방망이로 짓이긴 부추가 된 것 같지만 꼴같잖은 상사에게 밟히는 것 보다야 햇빛과 땀에 쩌는게 훨씬 우아하게 짓이겨지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몰골이야 백화점에서 산 실크 블라우스와 하이앤드 힐을 적정온도 안에서 땀 한 방울 없는 몸 위에 걸친 그들과 판이하게 다르지만, 다시 한번 오후 두 시에 땀에 쩔은 운동복과 머리를 한 채로 나는 내가 이겼다고 확신했다.


나는 이 더위에 어지러움이 밀려올 때까지 나무가 빼곡한 주택가를 걸었다.


체질상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 내가 등을 적시고 두 다리의 교차를 쉬지 않으며 생각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스커트나 타이를 메고 타이틀을 갖고 앉아 아침에 바른 헤어왁스나 립 틴트가 망가지지 않는 그들의 삶에 속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

땀과 더위에 쪄들어가면서도 이겼다 이겼어를 외치는 것은 어쩌면 자격지심인가, 하는 생각.

땀으로 떡진 머리를 한 내게는 없고 아침에 우아하게 볼륨을 넣은 헤어스타일이 망가지지 않은 그들에게는 있는 것 연봉, 베네핏, 인슈런스 그런 것 따위를 나도 선택했어야 했나 하는 잡생각.


나는 어릴 때부터 생각했다.

시간을 팔고 써서 돈을 버는 일은 현명하지 못한 것이야,라고.

얼마나 어마어마한 확률로 태어난 생명인데 같잖은 상사에게 까이는 걸로 생의 일부라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내 인생에 두지 말아야 할 것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그것들 중 일부는 직장과 상사 따위, 그리고 가슴 뛰지 않는 일에 시간을 팔아 돈을 사는 행위였다.

그것들은 내 삶과 시간과 에너지와 창의력, 그러니까 요컨대 나라는 인간을 약탈하고 갉아먹는 신종 노예제일 뿐이라며 나는 내 선택에 확신을 가졌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그래 나는 그들보다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낼 거야!' 그러나 한여름 오후 두 시에 산책을 나갔다 과도한 비타민 디 흡수로 인해 파김치가 되어가며 한 생각이라는 게 고작 나를 의심하는 일이었다.





내가 이탈해 선택한 길은 매우 길고도 끝이 없는 여정이었다.


그러니까 그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게 또 그지없이 땅그지 같은 것이었다.

말이 좋아 아티스트지 길바닥에 속수무책 나뒹구는 쓰레기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다녔다.

새로운 곳에 가서도 대단하고 유명한 것보다 쓸모없이 놓여있는 아무거나에 마음이 쏠렸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의미를 부여해주면 그들도 특별해졌다. 아무것도 아닌 아무거나가 예술이 되는 순간 나는 마치 창조주라도 된듯한 희열을 느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앞서 말했듯 매우 대단한 일이었다.

쓰이고 버려지고 잊히는 과정을 빠르고 간단하게 거친 후 생을 마감하는 물건에 의미를 부여해 예술품으로 재탄생시킨다. 그로 인해 그것에 가치가 생기고 의미가 생기며 100년이고 200년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이 생긴다. 그러니 그 순간 내가 창조주라도 된 것 같은 허세는 가짜가 아닌 진짜인 것이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땅바닥에 뒹구는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 들어 이름을 지어주고 가치를 만들어 주었듯이 단어를 채집하고 다녔던 시절. 길바닥의 동전을 찾아다니는 배고픈 홈리스처럼 애절하고 절실하게 찾아다녔다. 어쩌다 마주친 유려한 단어는 무려 오백원 짜리 동전처럼 느껴졌다. 그런 단어들을 차곡차곡 저금통에 모았다가 필요할 때에 필요한 곳에 쓰는 보람은 견줄 곳이 없었다.


내가 수집하고 채집한 단어들을 정성껏 만지고 윤이 나도록 닦아 두었다. 불시에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그런 단어들은 내가 글을 쓸 때 이리로 저리로 자리를 옮겨지며 스스로 꼴을 갖추어갔다.

내가 주어 담은 유려한 단어들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들어진다. 겨우 글자들이 나란하게 정렬되어 있을 뿐 인데도 아름다웠다. 시간과 공을 들인 문장들은 그랬다. 그리고 하찮던 것들이 모여 슬슬 한 편의 글이 되고 시가 되어 갔다.


여술을 한답시고 거렁뱅이처럼 흔하고 평범한 것들을 눈여겨보다 보니 의외로 그곳에서 나를 포함한 요즘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보였다.

요즘 우리가 흔하게 표현하는 흔남 흔녀, 혹은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빌딩 안, 빼곡한 네모 의 촘촘한 한 사람 한 사람. 마치 내가 기계에 쓰이는 부품이 되기 위해 태어났나 싶은 의심이 솟구칠 때 나는 경로를 이탈해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잘빠진 하이웨이를 벗어나 구불거리는 로컬을 달리며 바라본 풍경은 이채롭고 다채로웠다.

비록 느리고 목적지가 멀고 불분명했지만 그곳에는 우리가 바쁜 일상에 쫓기느라 놓치고 있었던 낭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빠져나와 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기계 속 나사나 물건을 포장하는 봉투 등도 처음 태어나는 순간에는 사실 나무에 처박힌 부품이나 물건을 포장할 때나 쓰이는 물건 따위가 아닌 완제품 그 자체로 완성된 하나의 정체성을 갖은 자아였다는 것을 말이다.


요즘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이 되라고 강요받기 바쁘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그곳에서 쓰임 받고 있지 않으면 나는 바로 쓸모없고 의미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그저 바라보며 감동받고 고액을 지불해 소유하고자 하는 예술품들에게서는 쓸모를 찾지 않는다. 그것은 정작 쓸모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내가 이야기 속에 담은 작가들은 모두가 평범하고 버려지고 기능을 상실하는 등 쓸모없고 가치 없는 것들을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

방치된 자전거 바퀴 길바닥의 돌 고장 난 텔레비전 싸구려 시계와 주얼리 처치곤란인 플라스틱 백이나 오피스에 수북이 쌓인 Paper fasteners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고 버린 물건이나 가치 없는 것들에게 우아한 삶과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예술가들. 벽에 박히지 않은 못은 그대로 플레이트에 담겨 우아하게 전시되었다.

나 역시 그 여술가들처럼 당신의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목표를 향해 미친 듯 달리다가 문득 현타가 오는 젊은이들에게 그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당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특별하다고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빠르게 변하는 요즘 시대, 나를 쪼아대는 직장과 상사로부터 찌들어 기능이 상실되고 영혼이 고장 나는 순간, 혹은 SNS 속 화려하고 블링블링한 타인의 삶과 비교되어 갑자기 나만 초라하고 평범하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순간,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아를 잃어버리는 순간 그리고 나만 뒤쳐진 것 같은 불안한 순간 등에 자신만의 속도와 자아를 찾아주는 이야기. 그리고 어딘가에 유용하게 쓰이다가 문득 내 존재가 의심스러울 때, 내가 이럴라고 태어났나 절망스러울 때 꺼내어 보면 좋을 작품들.


더 치열하고 더 열정적으로 살아야 할 시대에 무엇이 되지 말고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느린 삶을 떠드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차피 못으로 태어났으면 어떻게 더 비싸고 이름난 가구에 박힐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방법론이야 이미 모두가 알고 있으니 나는 못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꼭 자신을 구부러 트리고 희생해야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경로를 이탈해 예술을 한답시고 특별한 것 말고 아무거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이곳에 실린 사진들 역시 내가 거렁뱅이처럼 쓸모없고 아름다운 것들을 주으러 다니며 방황할 때 보고 위로 받았던 작품들을 마음 안에 모으고 간직해 두었던 것들이다. 내가 실제로 보았던 그 쓸모없고 고장 난 물건들은 실로 고급스러운 전시장에서 기품 있게 빛이 나고 있었다. 나무 판때기에 박히거나 물건을 포장하는데 쓰였다면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숨겨진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역시 내가 경로를 이탈해 들여다본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모두가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었다.




집에 돌아와 물을 마시고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누웠다.

오후 세시가 넘은 시간, 망가지지 않은 헤어스타일과 슈트를 입은 그들이 아직도 빵빵한 에어컨디셔너 속에서 상사에게 뭉개지며 배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땀에 찌든 머리 모양으로 했던 나의 의심은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샤워를 하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다시 확신한다, 느리고 불 확실 하지만 나는 이겼다고 말이다.


비록 연봉과 베네핏이 없을지라도...







쓸모없는 것들을 모으러 다니거나 그것들을 가치있게 만들거나 하는 또 다른 나의 오후 두 시



세상에 널브러진 단어들을 모았다가 문장을 만든다. 가장 유려한 문장이 될 수 있도록 그것들을 지었다가 부셨다가를 반복한다. 겨우 글자들이 적절하게 나열되었을 뿐인데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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