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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윤 Nov 01. 2020

플라스틱 백의 페르소나

소모적인 것 (타유의 플라스틱백)


소모적인 것의 자아실현


매장에서 물건을 사면 흔하게 받아 볼 수 있는 스마일(땡큐) 백.

돈을 지불하고 받아 든 봉투 위의 얼굴에는 미소와 고마움이 가득 묻어있다. 마침 만들어진 웃음을 가득 머금고 봉투를 건네는(난생처음 보는, 심지어 다시 볼 일 없는) 직원이 땡큐, 를 외치며 얼굴에 올린 그 웃음과도 같은 웃음이다.

사실 환경에도 좋지 않고 집에도 수북이 쌓여 처치곤란인 이 플라스틱 백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다.

환경에 악 영양을 미치는 플라스틱 백의 페르소나는 바로 편리함이었다.

특히 미국에 살면서 그 플라스틱 백의 진짜 자아 혹은 이고가 어떻든 간에 집에 이미 산더미처럼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트에서 나오며 한 움큼을 집어오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모든 쓰레기를 이 플라스틱 백에 넣은 후 휙 하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환경을 생각한답시고 텀블러를 사용하라고 잔소리를 하던 어제의 나와는 역시나 또 다른 자아인 것이다.


오늘 그런 착하고 고마운 플라스틱 백의 두 얼굴을 문득 보게 되었다.

쓰레기를 한 것 넣고 내다 버리기 직전 잠시 캐비닛 손잡이에 걸어둔 스마일 백과 불시에 눈이 마주쳤다.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상냥하고 온순한 얼굴이 아주 섬뜩한 웃음으로 돌변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녕, 나는 너희를 파괴하러 왔어.


순간 놀라 땅바닥에 내던진 얼굴은 이내 예전의 그 상냥하고 안온한 웃음으로 돌아왔으나 격앙된 내 마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스마일 백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감정의 흐름도 없이 가면을 바꿔 쓰듯 빠르고 기계적으로 표정을 숨겼다.


일순 그 얼굴에서 나, 혹은 요즘 시대의 우리의 얼굴이 스쳤다.

나를 너무나 잘 아는 K는 내가 깊지 않은 관계의 타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가식적이라고 늘 말한다. 감정을 잘 억누르고 (감추고) 싫은 사람에게 있지도 않은 눈가의 주름을 있는 대로 구기고 치열을 들어내며 만들어낸 가짜 '눈웃음'으로 가면을 쓰는 순간을 나와 가장 가까운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다.

순간 땅바닥에 내던져진 스마일 백의 얼굴과 일순 눈 주위의 근육을 적절하게 움직여 만든 내 사회적 얼굴이 겹쳤다.


나는 그녀에게, 스마일 백은 나에게 재빠르게 바꿔 쓴 가면을 들켜버린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타인의 진짜 본모습은 무엇일까.

나에게 상냥한 미소를 건네며 전해진 편리한 플라스틱 백의 진짜 본모습은 환경을 파괴하고 야생동물을 죽이는 섬뜩한 이면을 가지고 있다.

전혀 스마일스럽지도 땡큐스럽지도 해브 어 나이스 데이스럽지도 않지만 그것은 늘 해브 어 나이스데이를 가식적으로 외치며 스마일 백 혹은 땡큐 백으로 불린다.

전혀 감사하지도 전혀 존경스럽지도 않은 직장 상사 앞에서 치열을 들어내며 가짜 스마일을 쥐어 짜내는 내가 성격이 좋고 인성이 좋은 누구누구로 불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직장이나 상사 따위가 없는 삶을 살겠다고 선언했지만 아직은 비교적 젊고 나약한 입장에서 사회생활 속 가면은 필수 불가결한 잇템 인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젊은 신종 노예에게는 정말 유용하고 필요한 아이템인 것이다.


그러나 이내 고마운 척을 하며 웃고만 있던 스마일 백의 이면을 보았다.

편리하고 유용하게 쓰이는 플라스틱 백은 종내 지구와 자연을 파괴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타인에게 있지도 않은 눈가의 주름을 만들어 가며 웃음 짓는 가면 뒤의 내 속이 진짜 나의 자아를 파괴하는 것처럼.


요즘 우리는 깊어가는 눈가의 주름이 비록 거짓일 지라도 쓸모가 있길 바라며 세상에 가식으로 나마 기꺼운 웃음을 짓고 살아야 하는 환경에 살고 있다. 그러나 플라스틱 백이 웃는 얼굴 속 진실을 감추고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서서히 생태계를 파괴하듯 그 가면 역시 서서히 그리고 완벽하게 우리의 정신을 무너트리고 있다.


기뻐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기쁜 것이란 말은 틀렸다.

나를 힘들게 하는 타인에게 웃는 얼굴과 영혼까지 굴복시킬 인내심으로 그들을 대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는 기대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진짜 내 내면이 망가지고 난 후에야 알았다.

생태계와 자연이 순간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작은 균열으로부터 조금씩 서서히 파괴되듯 그저 기계적으로 해브 어 나이스데이와 땡큐와 스마일 따위로 무장한 나의 가면이 결국 나를 무너트린 것이다.


스마일 백은 오늘 나에게 자신의 가면을 들켜버렸다. 웃는 얼굴을 하고 무언가를 파괴하는 그것을 나는 편리하고 유용한 것이라고 애써 포장하고 착각하며 살고 있었다. 스마일 백이 가면을 바꿔 쓰는 순간을 알아버린 이상 나는 그것을 그저 방관하고 간과할 수만은 없었다. 웃는 얼굴이 환경을 파괴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이므로.


본모습을 들켜버린 스마일 백처럼 나도 내 감정을 드러내고 조금은 솔직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웃는 얼굴이 생태계를 파괴하듯 나의 가면은 내 내면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생각해 보니 내가 가면을 쓰는 모습을 들켜버린 K앞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그녀 앞에서 나는 결코 가식적인 웃음을 얼굴에 뒤집어쓴 스마일 백이 아닌 것이다.

애써 감췄지만 들켜버린 후로 그녀 앞에서는 웃고 싶을 때 웃고 화가 나면 화를 내며 짜증이 나면 짜증을 표출했다. 그녀 앞에서만은 내가 건강하고 솔직하며 나다울 수 있었다.


어쩌면 오늘 스마일 백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숨겨진 얼굴을 들킨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구해달라고 말하고 싶어 일부러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들켜버린 것이 아닐까. 내가 K앞에서 실수인 듯 모르는 척 가면을 벗어버린 순간처럼 말이다.


그것은 그녀 앞에서 더 이상 내 자아가 파괴되지 않듯 나로부터 자신이 파괴하고 있는 것들을 보호해 달라는 무언의 신호였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없어서는 안 될 페르소나.

어쩌면 우리의 이면에는 가면을 들켜 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면을 벗고 진짜 나의 모습이 들어 났을 때 어쩌면 더욱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나로 재탄생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므로.








Armory Show New York 2019



Pascale Marthine Tayou. Plastic Bags 2019.



카메룬의 아티스트 Tayou의 Plastic Bags.

그는 여행지에서 잠깐 쓰고 버리는 물건들을 수집하고 그것에서 영감을 받는다. 우리가 흔히 가치 없고 쓸모없는 것들을 버릴 때 그는 그것들을 재사용하고 재활용해 아름다운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아티스트가 쓸모없는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 때 비록 쓸모없던 물건만이 가치 있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플라스틱 백이 스마일 백이라는 페르소나를 벗어버리던 순간을 나에게만 들킨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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