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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윤 Jun 01. 2020

파리에서 뉴욕으로 편지를 부치는 수고

느린 것

느리고 과정이 복잡한 일에는 깊이가 있다


느린 것의 깊이


프랑스와 핀란드에서 보내온 사촌동생의 편지들.

동생은 프랑스로 간 후 나에게 자주 편지를 부쳐 왔다. 답 한번 제대로 보내지 않았던 무심한 언니를 감안한다면 무척 성실하고 여간 정성스러운게 아니다. 영혼 없는 친절을 덕지덕지 묻히고 날아오는 숫자와 광고들이 빼곡한 고지서와 전단지 속에서 그녀의 편지와 엽서들은 단연 빛이 났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런 걸 좋아했다.

세상의 속도에 역행하는 일 세상의 관심에 저항하는 일. 과정에 수고가 담기고 결과가 시간을 걸쳐 후에 오는일, 따위를.


느리고 과정이 복잡한 일에는 깊이가 있다.

이를테면 장편의 소설을 읽는 일, 혹은 장편의 소설을 쓰는 일.


나와 동생은 다른 또래 가족들과는 유난하게 달랐다. 무척 유난했으나 티가 나지 않고 티를 낸들 그 유난을 알아볼 눈이 없으면 알아채기 힘든 유난이었다.

내 생각에 그 유난의 근원은 독서였고 그 유난의 결과는 우물처럼 깊고 끝이 안 보이는 심연이었다. 책을 많이 읽어 유난스러워졌는지 본디 유난스러운 아이였으므로 책에 깊게 빠진 건지 모르겠으나 지금 와 가만 생각해 보면 전자가 아닌 후자가 틀림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책을 원망할 마음은 없다.


우리는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몽상가였다. 몽상가 중에서도 하드코어에 속한다 자부하는 우리지만 자라면서 그녀는 예술을 선택하지 않았다. 공부가 적성에 맞아 전혀 몽상가스럽지 않은 일을 미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척척 해 내고 있는 그녀를 보면 그저 대견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프랑스에서 공부하며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에도 그녀는 밥을 굶을지언정 돈을 모아 피아노를 샀다고 동영상을 찍어 보내왔다. 들어오면 나가기가 바쁜 재산을 탕진해 가며 물감을 사는 나나 허기를 버틴 돈으로 피아노를 사는 그녀나. 우리는 늘 환각제가 없어도 땅을 밟지 않고 공기에 부유하는 기분으로 사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밥을 먹여주지 않는 예술로 끼니를 채우는 아이들. 가슴과 머릿속이 늘 무언가로 부풀어 배가 고프지 않은 아이들. 그런 것들이 없다면 세상을 버티지 못한 아이들. 그리고 그런 것들로 만 세상을 버티는 아이들. 그런 어른 같은 아이들이 자라 아이 같은 어른이 되었다. 여태 몽상가 인체로.


문득 동생이 오래건에서 핀란드로 유학을 가기 전 잠깐 뉴욕에 들렸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그녀는 '언니 이런 곳은 너무 살기 싫어!' 라며 뉴욕에 환멸을 표했다. 지금 파리의 삶은 어떤지 문득 안부를 물어야 할 의무를 느꼈다.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는 얼마 되지 않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성실하고 열성적인 동생을 둔 언니로서 그 아이에게 좀 더 관대하고 부지런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책을 하게 된다.


단 1초면 세상을 관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 문자나 이메일도 아닌 편지를 타국으로 보낸다니, 갑자기 헛웃음이 난다.


왜 이런 수고를 좋아하는지 왜 이런 수고를 해야만 하는지 뉴욕에서 파리로 손으로 눌러쓴 편지를 통해 동생에게 꼭 물어야겠다.



오늘 밤, 음악을 틀고 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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