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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윤 May 28. 2020

나는 하이웨이를 벗어나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로 했다

불분명 한것

Tarrytown, NY


불분명하지만 다채로운


세수를 하고 서 있는데 불현듯,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나 내가 오고자 했던 것도 누군가에게 떠밀린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떤 연유로.

어제도 그제도 그 자리에 있던 테이블과 카우치와 음악 속에 놓여있는데 모든 것이 낯이 설고 생경했다.

무엇이 나를 이리로 보냈을까. 내가 이 시간,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존재할 텐데. 반드시.


졸업도 끝이 아니고 취직도 끝이 아니며 결혼 역시 끝은 아니다.

우리에겐 인생이라는 길 위를 달리다가 마주치는 휴게소가 필요했다.

달리다 보니 졸업을 해 한시름 놓고 또 달리다 보니 취직을 해 한시름 놓고 또 달리다 보니 결혼에 도달해 한시름을 놓듯 우리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던 휴게소가 필요한 것이다. 그 속도로 삶이라는 길을 조금 더 달리다 보면 아이가 있고 또 조금 더 달리다 보면 엉뚱한 시련도 오고 또 생각지도 못한 행운과 맞닥뜨리듯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맞게 되는 그런 일, 그런 곳.

예상했던 휴게소든 예상치 못한 휴게소든 우리는 개스를 넣고 주린 배를 채우고 불필요한 배설물을 내보내고 그렇게 몸과 마음의 시름을 내려놓고 다시 떠날 수 있는, 생을 펼칠 필요 없이 잠시 쉬다 떠날 곳이 우리에겐 절실하게 필요하다.


나는 지금 배도 무척 고프고 화장실도 급하며 개스까지 떨어져 가는데 도무지 나오지 않는 휴게소를 향해 전전긍긍 달리고만 있다.


절절해 생각해보니 벌써 몇 군데나 그냥 지나쳐 온 것인지, 이제서야 내가 왜 그랬나 후회를 한다.


쉼 없이 달리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목적지'라는 곳에 더 빠르고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유를 부려야 했다. 삶은 그저 고속도로를 휴식도 없이 달리듯 질주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라는 음성으로 끝을 맺는 도로주행처럼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인생이란 도로 위 제한 속도처럼 모두에게 같은 속도를 유지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쟁사회에 태어난 우리의 착각일 뿐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안전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 그 길이 누군가에게는 고속도로이고 누군가에게는 비 포장 언덕길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맞는 차에 탑승한 뒤 천천히 풍경을 즐기며 달려갈 수 있는 여유가 필요했다.


휴게소에 들러 잠시 도로를 이탈해 부리는 작고 사소한 여유는 우리가 다음 목적지로 가는 동안 필요한 힘을 충전하고 불필요한 것을 내다 버리며 앞만 보고 달리던 몸과 마음이 비로소 풍경을 바라보고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진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 내릴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나는 두 번 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이번엔 휴게소 싸인이 보이면 절대로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 exit을 확인해야지 다짐한다. 그곳에 들려 한자세로 오래 버텨온 몸도 풀어주고 정말로 내가 가고자 했던 방향이 맞는 것인지 커피 한잔을 마시며 생각해 볼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해 달려오던 이 길이 아니다 생각된다면 나는 그 시점을 맞아 차선을 이탈할 수 도 있다.


어쩌면 나는 빠르게 달리는 고속도로보다 조금 거칠지만 자연스러운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풍경도 있고 사람도 있고 고불고불 멀리 돌아가야 하며 자칫 길을 잃어 헤매이기 십상인. 모두가 한방향을 보고 경쟁하듯 달려가는 잘 다져진 고속도로가 아니라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 여차하면 차를 세우고 게으름을 피울수도 있고 지루하다 싶으면 샛길로도 빠져버릴수 있고 길가의 고양이도 만날 수 있는 느리지만 변화 무쌍하며 답이 필요 없는곳. 나에게는 그런곳이 더 잘 어울릴수도 있겠는 생각을 했다.


 빠르게 달려 도착한 입력의 결과인 목적지 보다 길을 잃고 헤매이다 도착한 엉뚱한 곳이 사실은 내가 가야 할 진짜 '목적지' 일지 모를 일 이므로.



끝으로,

이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하이웨이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누군가 그 잘 다듬어진 빠른 길을 선택한 이가 그 길 위에서 지쳐가고 있다면 나는 작은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집도 사람도 눈요기도 없는 이 상막한 길은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에 조금 더 쉽고 안전하게 도달하도록 만들어진 길이며 그 길 가운데 반드시 지친 이들에게 숨을 쉬도록 만든 휴게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그곳을 이미 지나쳤다 하더라도.


나는 다음 휴게소를 기점으로 하이웨이가 아닌 로컬을 선택해볼까 한다.

그 도로를 끝까지 달리기로 결정한 이들에게 안녕을 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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