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Pray for China' 멀고 먼 이야기…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프레이 포 차이나'
이런 단어를 외쳤다가는 '매국노' 소리를 듣거나 '조공국가 인증', '검은머리 짱개'라는 조롱 섞인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중국에 있으면서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중국인 아니 범위를 좀 넓혀서 동양 또는 아랍인들의 죽음에 사람들이 굉장히 무신경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희생자들에게 혐오적인 표현까지 일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반면 유럽에서 외로운 늑대 테러나 대형 사건 사고가 나면 온 세계가 일어나 추모 물결이 인다.
어떤 때는 페이스북에 추모 배너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내가 보기엔 참 패러독스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내 생각에는 우리가 굉장히 그들(서양인)보다도 더 오리엔탈리즘에 찌들었거나 그들을 선망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제 디자인계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중국이 세계의 절반인데 이곳에 모든 콘텐츠는 준비돼 있다'
'우리가 파고 들어야할 곳은 이 지점이다. 우리의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이 콘텐츠를 활용하자'
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이 분들의 의견에 매우 동의했다. 우리가 이상향으로 바라보는 곳보다 황금알은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국내에서도 발생한다.
나는 지방에서부터 기자생활을 해 왔다.
지방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서울 사람만 사람이지 지방 사람은 사람도 아니지. 여기서 수십 명 죽어봐야 뭐 뉴스 한 쪼가리 나오겠냐?'
이런 조소 섞인 말을 듣거나, 또 내가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사람은 다 똑같은데'였다.
그렇다. 정말로 사람은 다 똑같다.
죽음에 무게를 달리할 수 있을까? 하나의 생명이 사라져 간 것에 우리는 조롱 섞인 자세를 취하며 인간성을 상실해야 옳을까?
전범이나 악독한 독재자라 해도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의 삶에 분노할지언정 그의 무덤에 침을 뱉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죽음을 조롱한다. 특히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 말이다.
중국에 와서 대형 사건 사고 기사를 쓰고 나서 항상 드는 생각은 '서양 사람만 사람인가...?' 였다.
인간은 어떤 역사나 배경을 가졌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긴다.
나는 가끔 유럽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에 '프레이 포 XXX'이라는 추모 테그가 등장하면 약간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내가 쓰는 중국 사건 사고 기사에는 '대륙이 또?' '착한 짱개는 죽은 짱개' '대륙이 또 대륙했네' 이런 댓글이 달린 것을 자주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숙연해 져야 한다. 죽음은 장난이 아니다. 특히 남겨진 이들에게는 이런 조롱은 깊은 상처로 남는다.
나는 말이 언젠가 떠돌다가 그 대상에게로 전해진다고 믿는 편이다.
당신이 남긴 조롱은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에게 전해질 것이다. 정말 말은 발도 없이 천리를 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음을 대하고, 이를 표현할 때 다시 한 번 숙고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누군가 내 가족의 죽음을 조롱한다면 이 세상에서 느껴본 적 없는 분노를 느낄 것 같다.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최근 중국에서는 일주일새 산시성에서 산사태로 병원 건물 세 채가 무너져 20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또 어제는 장쑤성에서 화학공장이 폭발에 거의 100명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사경을 헤매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비보가 날아들었다. 후난성 고속도로에서 관광버스가 불에 타 26명이 숨졌다고 한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보자. 어감도 생경하지만, 이 말을 되뇌여보자.
'프레이 포 차이나'
#죽음 #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