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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May 24. 2019

꼭 한 번은 이렇게 그를 추모해 보고 싶었습니다

#단상


<꼭 한 번은 이렇게 그를 추모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니 이 글은 우리에게 약간은 쓰라릴 수도 있다.

언젠가는 꼭 그의 죽음을 이렇게 추모해 보고 싶었다.


그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20대의 치기 때문이었던가 모두가 그를 추모하는 모습에 약간의 반골 기질이 동했던 것 같다.

얼마 전까지 죽음의 굿판을 벌이자던 사람들과 아예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이 울며불며하는 꼴이 보기가 싫었다.

그의 죽음이 있고 몇 년이 지난 후 가장 친한 대학 학회 친구들과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 누구도 그를 욕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정치에 아예 무지한 사람조차도"


우리는 이 말을 하면서 이제 와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마치 자신은 그러지 않은 양 한발 뒤로 빼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래서 '그립습니다' 이런 말을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보다 여든 야든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한껏 이용하는 사람들을 대차게 욕하는 게 더 그를 의미 있게 추모하는 거라 생각했다.

사실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킨 문 통과 유시민, 안희정 정도를 제외하면 정치인이고 언론인이고 그를 추모할 자격이 있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


물론 나를 비롯한 대부분 국민도 포함해서 말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특히나 본인이 불리한 상황에 대해서는 망각의 무저갱으로 자신의 죄를 훌렁 벗어던져 버리기 때문에 이젠 흔적조차 없는 아픈 옛 기억을 다시 소환해 보자.


그때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를 외쳐댔고, 그를 조롱하기 바빴다.

우리가 그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라크 파병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던 즈음이었고, 정권 말기 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던 때에는 절정에 달하고, 그의 가족의 뇌물수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던 때는 누구도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침을 뱉으며 확인 사살을 해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그의 죽음이 속보로 전해졌다.


우리는 이전의 모든 과오를 한 번에 다 잊어버린 채 갑자기 추모의 신이 빙의된 거 마냥 부산을 떨었고, 그의 죽음을 신성시하고 그를 신격화해버렸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인정은 저 멀리 먼 태평양 바다로 떠내려 보낸 뒤 터부시 하며 누구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용서를 빌 기회를 상실한 어린양들은 서둘러 자신의 죄를 털어 냈고, 속죄 의식을 광적으로 치르기 바빴다.

그때뿐 아니라 우리는 지금도 알맹이 없는 이 속죄의식을 매년 5월 23일이면 치르고 있다.

그러는 사이 그를 손가락질하던 우리의 죄는 싹 씻겨 내려가고, 처연하고 가련하게 상복을 걸친 지도자 잃은 불쌍한 국민의 모습만 남게 됐다.


우리는 그를 그리워하고 추모하기 전에 사과를 먼저 해야 하는 게 맞다.

실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악의 권좌에 올려 두고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런 말을 할 것이 아니라,


그냥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의 공을 과도하게 포장할 필요도 없고, 과를 감출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져야 하는 짐을 지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조금씩 그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10주기가 되어서야 겨우 이 말을 하게 됩니다.


죄송합니다.


그곳에선 사람 사는 세상 꼭 만드시길 바랍니다.


2019.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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